평민·공화 "높은 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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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
개표가 거의 끝난 27일 아침 제1야당의 자리를 평민당에 뺏긴 민주당은 그야말로 망연자실한 분위기 속에 당원들 사이에서는 탄식과 한숨이 속출.
밤을 새워 가며 TV수상기를 지켜보던 박종률 선거대책본부 부 본부장을 비롯한 상황실 근무 자들은 한 가닥 기대를 걸었던 서울에서의 역전 가능성이 사라지자 박 부 본부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당사를 떠났고 상당수 근무 자들도 철수.
오전8시쯤 당사에 나타난 김명윤 총재권한대행은 피곤한 모습이 역력한 상태로 기자들과 회견.
김 대행은 패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당의 선거전략이 미흡했고 선거에 대처하는 노력도 부족했던 것이 큰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사상 유례없는 금권·관권·폭력선거 양상에 대한 당의 인식 및 대응이「어리석었던 게」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
김 대행은『1당2당의 여부는 원내 의석 수에 따라 결정되는 게 당연한 논리이므로 평민당을 제1야당으로 인정하는데 조금도 인색치 않겠다』며『다만 득표 율이 평민당 보다 높았다는데 긍지를 갖고 있으며 이 점에 대해 국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 대행은『민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갖지 못했다 하더라도 정국구도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며『정치인 모두가 나라를 생각하고 정치다운 정치를 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별문제가 없지 않겠느냐』고 점 찮게 논평.
김 대행은『빠른 시일 내에 전당대회를 열어 당의 체제를 정비해 나가겠다』면서『등원거부 투쟁 같은 것은 고려치 않겠다』고 언명.
개표초반 민주당도 근거지인 부산을 석권하고 경남에서도 예상보다 압승한 지역이 나오는가 하면 절대열세로 보았던 강원 등지에서도 선두주자가 나오자 환호분위기에 휩싸이기도.
그러나 전라도전지역이 압도적인 평민당 우세로 흐르고 서울에서조차 예상외의 평민당 후보가 선두로 달리자 초조해지기 시작. 특히 당선 가능 권으로 판단했던 김상현·김수한·송원영 후보 등 당 중진들이 개표시작부터 밀리고 박용만 후보는 간발의 차로 앞서는 등 당 중진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분위기는 아연긴장.
일부 당원들은『공천이 문제됐던 곳은 역시 표가 안 나온다』며『특히 서울에서 공천을 제대로 했으면 이 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특정지역을 거론하며 성토.
그러나 새벽5시가 넘어서도 예상외로 선두에 나섰던 강원도의 김일동(삼척), 박경수(횡성-원성), 최정식(속초)후보 등 이 당선권으로 진입하자 그나마 희색이 감돌기도.
또 부산에서 민정당의 허삼수 후보와 격돌, 관심을 모았던 동구의 노무현 후보를 비롯한 14명의 후보가 압도적으로 이겨 나가고 금정구에서도 이대우 후보가 얼마 안 되는 차로 추격하고, 경남에서도 당초 예상보다 3∼4석을 추가 달성해 아쉬운 대로 체면유지는 했다고 자위.
26일 밤을 꼬박 새운 민주당의 김영삼 전 총재는 27일 오전 예상대로 부산지역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제2야당으로「전락」한데 대해 서운한 감을 숨기지 못한 채 기자회견을 15분만에 서둘러 끝내고 숙소인 동양관광호텔을 빠져나갔다.
측근에 따르면 김 전 총재는 26일 일찍 숙소로 돌아와 민주당 전국구 1번이며 친구이기도한 송두호씨와 함께 TV로 개표상황을 오전2시 쫌까지 지켜보다 잠을 청했다.
김 전 총재는 호텔10층 라운지에 TV3대와 전화로 종합상황실을 임시 마련, 부산지역의 후보들과 함께 개표 결과를 지켜볼 예정이었으나 부산지역에서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상황이 탐탁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자 이를 모두 취소.
따라서 상황실에서는 측근 수행비서 및 몇몇 사람만이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개표상황을 지켜봤는데 자정 무렵 민주당이 제2야당 화되는 것이 확실시되자 모두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김 전 총재는 27일 오전 자신의 지구당 사무실에 들르는 등 2∼3일간 부산에 더 머무른 뒤 귀 경할 예정.

<공화당>
중앙당사 3층에 마련된 종합상황실에는 26일 오후8시쯤 개표가 시작되면서 김용태 선거대책위원장을 비롯, 전예용 고문 등 당직자 50여명이 모여 앉아 TV로 중계되는 개표상황을 시청.
초반부터 충남 등 일부 지역에서 공화당후보들이 앞서자 환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으며 예상 밖의 선전에 축제 무드.
점퍼차림의 간편 복으로 상황실을 지킨 김 위원장은 흡족한 표정으로『출발이 좋다』며 『이제 공화당이 확실한 재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 그 동안의 고생이 뿌듯하게 느껴진다』고 첫 소감을 피력.
밤이 깊어지며 당사 주변 음식점에서 떡 등 간식을 준비 해와 압승을 기원했고 일부 당직자 가족도 과일 등을 준비 해와 성원.
이날 오후10시쯤부터 당선 가능한 후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초록색 삼각딱지를 대형상황판 후보 사진 옆에 붙이기 시작했는데 당선이 확정되는 대로 노란색 금배지 모양의 금박지로 바꿔 붙여 당선을 축하.
첫 금딱지를 붙인 것은 오전1시쯤 김종필 총재였는데 철야를 하던 당직자들이『역시 JP』라며 일제히 환호.
자정을 넘기면서 김 총재가 부여에서 상경, 상황실로 들어서자 당원들은 일제히 박수로 환영했으며 김 총재는 김 위원장에게 악수를 하며『수고했다』고 인사.
김 총재는『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아직 좀더 두고보자. 아직 예상에 미달하니 조금 더 보자』면서도 아주 흡족한 표정.
김 총재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여 개표결과가 나오자 빙긋이 웃고 처남인 박준홍씨가 조금 열세로 나올 때는『아직 몰라』라며 격려.
충남지역에서 공화당이 압도적 지지를 얻어 당원들의 탄성이 이어지고 호남지역에서 평민당 일색의 결과가 나오자 김 총재는『완전히 지역 당이 됐어』라며 아쉬움을 표시.
일부 당 원로들이 탈락해 당직자들이 애석해 했으나 대부분 예상했던 분포대로 맞아떨어졌다는 평.
13대 선거의 두드러진 특징인「지방 당 화 현상」이 공화당에도 나타나 충남지역에 JP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당에서도 예기치 않았던 김 현(대전동갑), 윤성한(대전 동 을) 박충순(대전서), 박병선(예산), 김종식(천원)후보 등 이 충남지역에서 대거 추가 당선되자 당에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한 당직자는『이 후보들은 특히 JP바람의 상승무드를 타고 당선된 것 아니겠느냐』며 『김 총재에게 큰절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싱글벙글.
한편 연예인 출신으로 이대엽 후보(성남 갑)가 예상대로 압승을 거두어 3선을 따냈고, 최무룡 후보(파주)도 아슬아슬한 접전 끝에 금 배지를 따냈으나 대통령선거 때부터 김 총재를 지원해 온 박병호 후보(성동 갑)는 실패.
공화당후보 중 어려운 싸움으로 예상했던 김문원 후보(의정부)가 예상외로 선전을 해준 반면 당에서 안정권으로 분류됐던 최재구(강남갑), 김두섭(김포-강화), 손승덕(춘천), 조중연(서천), 김상윤(의성), 임진출(경주) 후보 등은 예상외의 패배를 당해 이 지역 개표상황이 알려질 때마다 상황근무를 하고 있던 당직자들은 못내 아쉬워하기도.
특히 김두섭씨의 경우 매번 선거 때마다 김포-강화지역의 강세에도 불구, 인근 지역에서의 큰 표 차로 인해 낙선해 왔는데 소선거구제가 돼 당선이 확실시됐으나 또 다시 낙선의 고배를 마셔 8전8패를 기록.
또 임진출씨는 당락이 드러난 27일 새벽 중앙당으로 전화를 걸어『총재가 경주를 한번도 방문해 주지 않아 떨어지게 됐다』고 하소연하는 바람에 김 총재는 이를 달래느라 한동안 안절부절.
김 총재의 처남인 박준홍 후보(구미)는 4촌인 박재홍 민정당 후보와 간발의 차로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김 총재도『아직 좀더 두고보자』며 아쉬움을 표시했으나 끝내 낙선.

<안희창·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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