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판서 1년 보낸 박기복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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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위주의 추석 극장가가 너무 기름지다고 느껴진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권한다. 지난해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모았던 박기복(38.사진)감독의 '영매(靈媒)-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다. 5일 서울 하이퍼텍 나다에서, 13일 Theater 2.0에서 개봉한다.

'영매'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무당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무당은 망자와 생자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큰 언니부터 막내까지 죄다 무당의 길을 걷는 네자매 무당(진도 씻김굿 채씨 자매), 한 서린 어머니의 귀신이 몸에 들어온 시골 아낙네 무당(진도 강신무 박영자), 어머니의 귀신과 자신의 귀신이 서로 불화가 심해 괴로워하는 모녀 무당(인천 황해도 굿 박미정 모녀) 등이 등장해 죽은 사람의 한을 달래고 산 사람의 애통함을 위로하는 이 '직업'의 신산한 일상을 보고한다.

'영매'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것도, 상처주는 것도 가족에게서 배운다'는 극중 해설처럼 무당들의 씻김굿을 통해 위로받는 의뢰인들의 정경에서 보는 이의 코 끝도 자연스레 찡하게 울린다.

박감독은 올해로 다큐멘터리 감독 경력 10년째. 독립영화 제작사인 푸른 영상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9년 '냅둬'로 서울 다큐멘터리 영상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스스로를 "다큐멘터리 신(神)을 받은 다큐멘터리 무당"이라 부르는 그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2000년 진도에 내려가 약 1년간 머물렀다.

-무당과 굿이라는 소재를 택한 계기는.

"대학 전공이 철학이라 영(靈)적인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2000년 초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무형문화재 씻김굿 보유자인 김대례씨의 기록 영화를 보고 진도로 내려가게 됐다."

-1년간 현지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현지인들의 마음을 여는 게 제일 어려웠다. 처음에는 굿판에 카메라를 들이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무당들은 작두를 갈 적에 행여 부정한 말이라도 입 밖에 낼까봐 흰 천을 입에 물 정도로 엄숙하다. "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개인적인 느낌도 많았을 것 같다.

"무당과 의뢰인의 절절한 사연이 나의 문제처럼 다가오는 걸 느꼈다. '(가족들에게) 살아있을 때 조금이라도 잘해야겠다'는 회한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개봉하기까지 애로가 많았을텐데.

"제작 기간 3년에 제작비가 1억5천만원 가량 들었다. 영화진흥위의 독립영화 지원금과 조성우 대표를 비롯한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 영화가 '아, 다큐멘터리도 관객과 얼마든지 교감할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데 한몫 했으면 한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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