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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 실험까지 해야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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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최근 독일 자동차 업계가 사람과 원숭이에게 디젤 차량 배출가스를 마시게 하는 ‘가스실 실험’을 후원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뉴멕시코 주의 러브레이스 호흡기연구소(LRRI)는 2014년 자바원숭이 10마리를 밀폐된 공간에 집어넣고 하루 4시간씩 디젤차 배기가스를 마시도록 했다. 이 실험은 폴크스바겐(VW) 등 독일 자동차업체들이 만든 ‘유럽 운송 분야 환경보건연구그룹(EUGT)’이 의뢰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독일 아헨 공대도 EUGT 의뢰로 건강하고 젊은 남녀 25명을 뽑아 4주 동안 매주 3시간씩 디젤차 배기가스를 마시는 실험을 진행했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디젤 차량의 배출가스를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고, 자동차 업계에서는 배기가스가 해롭지 않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실험에 사용한 자동차는 실제 도로를 달릴 때보다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도록 조작된 상태였다.

에코사이언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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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 대신 원숭이를 사용한 사례는 드물지만, 중국 베이징 수준의 대기오염에 사람을 직접 노출하는 실험을 진행한 전례도 있어 이 실험 자체를 비윤리적이라고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다. 대기환경 기준치를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실험이 공정하게 이뤄졌느냐는 점이다. 로비 단체가 후원하고, 조작된 장치를 사용해서 건강한 사람만 골라 진행한 실험 결과를 믿을 수 있을까. 대기오염 수준과 환자 발생 빈도 등을 조사한 수많은 연구를 통해 미세먼지가 암과 호흡기 질환은 물론 치매·우울증·당뇨·비만 등을 일으킨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지난해 서울의 미세먼지(PM2.5) 농도는 ㎥당 25㎍/㎥(마이크로그램)이었다. 전 세계 인구의 90% 이상이 WHO 연간 권고기준(10㎍/㎥)보다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있다. 전문가들은 WHO 기준도 높다며 2.4~5.9㎍/㎥로 낮춰야 건강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쯤이면 자동차 제작사가 데이터 조작이나 장치 조작으로 벗어날 상황이 아니다. 오염 배출 실태를 정확히 공개하고, 동시에 오염을 줄일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했는데도 여전히 오염이 심하거나, 자동차 가격이 높아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