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마다 '여자 아나운서 띄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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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해 KBS가 발굴한 히트상품 중 하나는 노현정.강수정 아나운서다. 이들은 오락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며 활약을 펼쳤다. 망가짐까지 감수하며,'아나운서=뉴스앵커'의 이미지를 깼다. 팬들의 호응도 연예인 못지 않다. 인터넷에 팬카페가 생길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시청률은 기본이다. 노현정 아나운서가 진행하는'상상플러스'는 오락물 중 시청률 1위. 강수정 아나운서는 이번 개편에서 연예정보 프로그램'연예가 중계'의 새 MC로 발탁됐다. 아나운서가 이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 건 1999년 임성민 아나운서 이후 6년여 만이다.

사실 두 사람의 기용은 제작비 절감 차원이 컸다. 출연료 비싼 연예인 대신 자사 아나운서를 '재활용'한 셈이다. 그런데 이들의 스타성이 발현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공 모델 덕분일까. 방송가에 때아닌 아나운서 마케팅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초점은 주로 외모와 실력을 갖춘 여성 아나운서에 모아진다.

MBC는 최근 2001년 미스코리아 선 출신의 서현진 아나운서를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로 전격 발탁했다.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게 흠결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흔치 않은 일이란 점도 분명하다.

김주하 아나운서(기자로 전직)가 맡던 평일 뉴스데스크 앵커엔 박혜진 아나운서를 선택했다. SBS도 맞불을 놨다. 지난해 미스코리아 진 출신의 김주희 아나운서를 아침 뉴스'생방송 모닝와이드'의 앵커로 중용했다. 입사 6개월된 신예에 뉴스 앵커직을 맡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방송사들은 적극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까지 열었다.

방송사들의 아나운서 홍보는 달라진 아나운서의 역할과 위상을 반영한다. 또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대중문화 전반을 지배하면서 아나운서의 변신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많다. 명절엔 아나운서들도 댄스 경연대회를 펼쳐야 하는 판이다. 끼를 보여줘야 능력 있다고 인정 받는다. MBC는 1월 아나운서들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하는 웹 매거진(언어운사)을 창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아나운서의 연예인화가 대부분 외모가 뛰어난 여성에 집중돼 있어서다. 아나운서의 스타화가 가속화될수록 정체성 논란이 뜨거워지는 건 그 때문이다.

SBS의 한 간부는"예전엔 언어 전달력이 아나운서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지만, 점차 용모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방송사들이 전문성을 갖춘 노련한 아나운서들을 홍보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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