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식령 찾았던 스키 선수들 "北 선수들과 대화 많이 못해 아쉬워"

중앙일보

입력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상비군들과 북한 스키 선수들이 1일 북한 강원도 원산 마식령스키장에서 공동훈련을 하고 있다. [원산=사진공동취재단]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상비군들과 북한 스키 선수들이 1일 북한 강원도 원산 마식령스키장에서 공동훈련을 하고 있다. [원산=사진공동취재단]

"시설은 좋았지만, 북한 선수들과 실제로 대화는…"

지난달 31일부터 1박2일동안 원산 마식령스키장에서 북한 선수들과 합동 훈련을 소화한 한국 스키 선수들의 반응이다. 사상 처음 북한의 스키장에 건너간 선수들은 첫 합동 훈련 경험의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아쉬운 반응도 내놓았다.

이번 남북 공동훈련에 참가한 한국 선수들은 대표팀 상비군과 청소년팀에 속한 선수들로 구성됐다.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하는 알파인 스키,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맞춰 한국 선수들도 종목당 각 12명씩 합동 훈련에 나섰다.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스키협회 관계자는 "남북 공동훈련이 추진된 직후부터 여러 차례 해당 후보군에 엮인 선수, 지도자에게 수 차례 훈련 가능 의사를 묻고 인원을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달 31일 코스답사를 위한 자율스키 훈련을 진행했고, 1일엔 알파인 스키 친선경기와 크로스컨트리 공동훈련을 소화했다. 훈련은 하루 2시간씩, 이틀간 총 4시간 진행됐다. 이번 방북에 선수들을 이끈 김남영 대한스키협회 부회장은 "남북한 스키가 처음 실질적인 교류를 한 만큼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사전 답사 때 실제 시합이 가능하도록 전광판 가동을 요청했는데 실제 합동훈련 때 그대로 이행됐다. 북측에선 내내 호의적이었다"고 말했다.

마식령스키장. [사진 통일부]

마식령스키장. [사진 통일부]

남북 합동훈련이 열린 마식령스키장은 강원도 원산시 인근의 마식령 지역에 2013년 12월 완공된 곳이다. 총 부지면적 14㎢에 10개 슬로프로 구성된 마식령스키장은 북한에서 '동양 최대 규모 스키장'이라면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중요한 치적 중 하나로 꼽는 곳이다. 이번 남북 합동훈련을 통해 처음 공개된 마식령스키장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대북 수출을 금지한 고가의 장비와 외국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했다.

합동훈련에 참가한 선수들은 마식령스키장의 부대 시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크로스컨트리 대표팀 상비군인 이건용(25)은 "스키장 호텔엔 노래방, 사우나, 이발소, 당구장 등 있을 만 한 시설들은 다 있었다. 방 상태도 예상했던 것보다 좋았다. 식사하거나 운동하러 나갈 때마다 늘 청소해 정리돼있었다. 5성급 호텔 같았다"고 말했다. 알파인 스키 대표팀 상비군 조은화(24)는 "식사할 때 나온 메뉴가 16가지였다. 도토리묵, 스테이크가 에피타이저로 선보이고, 밥과 매운탕, 육개장이 메인 요리로, 아이스크림이 후식으로 나왔다. 4끼 내내 음식 양과 수준이 좋았다"면서 "호텔 시설은 수준급이었다"고 말했다.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상비군들과 북한 스키 선수들이 1일 북한 강원도 원산 마식령스키장에서 공동훈련을 하고 있다. [원산=사진공동취재단]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상비군들과 북한 스키 선수들이 1일 북한 강원도 원산 마식령스키장에서 공동훈련을 하고 있다. [원산=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스키장 수준과 설질 등에 대한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알파인 스키 대표팀 상비군 신정우(19)는 "슬로프가 전체적으로 큼직하고, 깔끔했다. 슬로프 주변에 설치된 안전 네트도 우리나라와 비교해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은화는 "둘째날 눈 상태가 부분적으로 뭉쳐져서 알갱이처럼 돼있었다. 그런데 스키장을 정비할 수 있는 차가 한 대밖에 없다고 하더라. 곤돌라도 군데군데 페인트 칠이 벗겨져 있는 게 보였다. 중고를 갖다 쓴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남북한 크로스컨트리 선수들은 즉석 시합까지 진행할 정도로 가깝게 보냈다. 이건용은 "북한 선수가 먼저 말을 걸면서 '남측에 스키장이 몇 개 있나' '스키는 몇 년 탔는가'라며 물으면서 조금씩 친해졌다. 둘째날에 북한 선수 1명과 우리 선수 2명이 즉석에서 시합을 했고, 내가 가장 빨리 들어왔다. 북한 선수는 '자신이 다른 장비를 빌려 타서 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동훈련을 소화한 선수들이 가장 아쉬워한 건 북한 선수들과의 실질적인 대화가 많지 않았던 점이다. 조은화는 "첫날엔 북한 선수들과 한마디도 얘기를 못 나눴다. 우리가 먼저 다가가면 멀리 가고, 사진 찍자 해도 안 찍고, 마스크와 고글로 가리더라"면서 "둘째날에 북한 선수들이 '남측엔 이런 코스가 있냐' '길이, 경사도는 어떠냐'고 묻기는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보유한 마식령스키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잠시 스키에 대한 얘기만 나눈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상비군들과 북한 스키 선수들이 1일 북한 강원도 원산 마식령스키장에서 공동훈련을 마치고 화합의 의미를 담은 꽃을 나눠가지고 있다. [원산=사진공동취재단]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상비군들과 북한 스키 선수들이 1일 북한 강원도 원산 마식령스키장에서 공동훈련을 마치고 화합의 의미를 담은 꽃을 나눠가지고 있다. [원산=사진공동취재단]

신정우는 "단순히 눈밖에서만 잠깐 만나는 게 아니라 좀 더 많은 교류가 있었다면 좋았다. 식사도 따로 했다. 직접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김 부회장도 "선수들 대부분 1박2일은 너무 짧단 의견이 많았다. 실질적인 교류가 이뤄지려면 적어도 매년 진행해서 한번할 때마다 2박3일 이상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진정성있는 더 많은 남북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알파인 스키 대표팀 상비군 A 선수는 "많은 제재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말같은 것도 조심해야 했고, 답답했다. 차라리 관리가 잘 돼 있는 우리나라 스키장에서 훈련하는 게 더 낫다. 굳이 다시 가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남북 모두 경기력 향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합동훈련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