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가, 문제는 액면분할이 아니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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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삼성전자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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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과 1일. 각각 하루 동안 삼성전자 주가 흐름은 판에 박은 듯 닮아 있었다. 오전 장 초반 주가가 상승하면 기다렸다는 듯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오후 증시 마감을 앞두고 주가는 다시 제자리. 삼성전자가 주식 한 주를 50주로 쪼개는 액면분할을 발표한 지난달 31일 이후 이틀 사이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17년간 액면분할 마친 667개 종목 #6개월 뒤 주가 4.3% 상승에 그쳐 #1분기 실적 전망 먹구름 끼면서 #증권사 대부분 목표 주가 내려잡아 #“추가 상승 여력 아직 충분” 반론도

삼성전자 주식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투자자의 고민은 주가 흐름으로도 드러난다. 전문가의 조언은 하나로 모인다. 액면분할 대신 실적을 보라.

주식 분할은 단기 호재일 뿐 주가 방향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KB증권은 2000년 1월부터 지난해까지 액면분할을 마친 667개 종목을 분석했다. 주가는 공시 후 52일이 되는 시점에 평균 13.0%(공시일 종가와 비교)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을 걸었다. 6개월이 지나면 주가는 공시일과 견줘 평균 4.3% 상승에 그쳤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액면분할은 주가에 단기간만 영향을 끼치는 ‘이벤트’”라며 “결국 개별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삼성전자의 액면분할 선언 이후 가장 뚜렷한 움직임은 주가가 아닌 ‘손바뀜’이다. 하인환 SK증권 연구원은 “과거 SK텔레콤과 제일기획, 아모레퍼시픽 액면분할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주당 가격이 내려가면서 개인은 사기 쉬워지지만 기관·외국인 투자자에겐 큰 이점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하루 사이 개인 투자자는 삼성전자 주식 7028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개인 투자자가 몰려 삼성전자 주가가 올라가면 기다렸다는 듯 외국인(-6167억원)과 기관(-1131억원)이 물량을 털어냈다.

1일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삼성전자 주가는 하루 전보다 0.16%(4000원) 하락하며 249만1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액면분할을 공시했던 다른 기업이 누렸던 ‘반짝 호황’도 삼성전자는 누리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2일 287만600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6개월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올해 1분기 실적 전망에 먹구름이 끼면서다.

이날 한국투자증권은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325만원에서 310만원으로 낮췄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도 65조9000억원에서 60조5000억원으로 내려 잡았다. 같은 날 현대차투자증권과 메리츠종금증권도 나란히 목표 주가를 340만원에서 330만원으로 조정했다. 노근창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이폰X의 1분기 물량 감소와 원화 강세로 인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같은 이유로 지난달에도 신한금융투자(350만→320만원), 키움증권(380만→340만원), 하이투자증권(330만→320만원) 등이 목표 주가를 잇달아 하향 조정했다. 대신 외국계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290만→280만원)와 달리 국내 증권사 모두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300만원 이상으로 잡았다. ‘매수(비중 확대)’ 의견도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10~11월 국내 증권업계에 팽배했던 낙관론은 한풀 꺾였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이사는 “원화 상승과 지난해 삼성전자의 주가 수익률, 디스플레이 부분의 실적 우려 등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인색한 평가를 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좋았고, 올해도 이익 상승세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주가의 추가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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