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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은 일자리 안정자금, 3조 준비했지만 신청 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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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노사정 대표자 6차 회의가 31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문성현 노사정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부터)이 회의 시작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노사정 대표자 6차 회의가 31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문성현 노사정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부터)이 회의 시작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최저임금’ 지원금 3조원 준비했지만 … 신청은 1.5%  

요즘 지역 고용노동청장은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일이 거의 없다. 시장으로, 중소기업 밀집지역으로 돌아다니기 바쁘다. 언뜻 보면 현장 행보다. 하지만 속내는 품팔이에 가깝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16.4%, 시급 7530원)에 따른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을 받기 위해서다.

지원 대상 268만명 중 4만명 신청 #상반기 58% 집행 계획 차질 불가피 #월 13만원 받고 4대보험 15만원 내 #사업주 “급전 쓰고 탈 나는 꼴” 기피

이런 행보가 벌써 열흘을 넘기고 있다. 지난달 22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의 호통이 있고서다. 당시 김 장관은 전국 지방고용청장과 간부를 소집해 “당장 신청서 들고 거리로 나가라. 다른 일 놔두라. 신청 건수부터 올려라”라고 독려했다.

김 장관이 회의를 열던 22일 신청 건수는 231건에 불과했다. 수혜 근로자는 545명이었다. 정부는 예산안을 낼 당시 지원대상을 267만7135명으로 봤다. 예산을 3조원이나 확보했지만 한 달이 다 되도록 0.02%만 지원한 셈이다. 주무 장관으로선 다급할 만했다. 오죽했으면 김 장관은 지난달 29일 서울 노원역에 현장 접수처를 열고 직접 신청을 받았다. 중소벤처기업부 등 유관 부처 공무원도 동원됐다. 그렇게 읍소해서 받은 신청 건수가 31일 현재 1만6508건이다. 수혜 근로자는 3만9057명이다. 전체 대상자의 1.5%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상반기 중에 일자리 안정자금의 58%를 집행하려던 정부 계획의 차질이 예상된다.

재송-일자리 안정 자금 신청

재송-일자리 안정 자금 신청

정부가 공무원을 길거리로 보내면서까지 신청에 열을 올린 건 ‘몰라서 신청을 안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 부처 공무원에다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까지 얻었는데도 성과는 1.5%에 그쳤다. 시장은 정부의 생각과 딴판이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모 지방청장은 거리로 나갔다가 자영업자로부터 “지원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 손실이 크게 나는데 그것 받아봐야 손실을 조금 덜어주는 것밖에 더 되느냐. 찔끔 돈 주고 손실을 감수하라는 얘기 아니냐”는 핀잔을 들었다. 시장과 동떨어진 정책에 시장이 등을 돌린 꼴이다.

근로자 1인당 13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도 사업주가 일자리 안정자금에 매력을 못 느끼는 이유가 뭘까. 우선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신청할 수 있다. 영세 사업주나 근로자로선 소득이 노출된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다른 보험도 가입해야 한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주는 근로자 1인당 4대 보험료로 월 15만원가량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지원금이 보험료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지원요건을 완화하기도 쉽지 않다. 법상 고용보험은 무조건 가입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4명 중 한 명이 미가입 상태다. 소득 노출 등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정부에서 ‘두루누리 사업’이란 이름으로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정책을 폈다. 보험료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는 이런 사회안전망 확충 대신 돈을 뿌리는 제도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땜질하려 했다. 더욱이 일자리 안정 자금의 지원 기간은 최대 1년이다. 그 뒤엔 사업주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서울 강서구에서 편의점을 하는 자영업자는 “급전을 빌렸다 나중에 덤터기를 쓰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표현했다. 정부의 정책보다는 인력 감축이나 가격 인상 같은 시장 기능에 기대는 이유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정책을 조합해야 빈곤을 없애면서 고용을 해치지 않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안정 자금 지원 대상과 요건

지원 대상
- 30인 미만 영세 중소, 상공인(공동주택 경비나
청소원의 경우 30인 이상도 지원 가능)
- 정부 예산 계획서상 267만7135명 지원
- 과세 소득 5억원 이상 사업주나 임금체불 사업주 등은 제외

지원 금액과 기간
- 근로자 1인당 13만원(노무비 1만원 포함)
- 최대 1년 지원

지원 요건
- 1개월 이상 고용(일용직은 15일 이상 근무)
- 고용보험 가입
- 3개월 평균 임금이 월 190만원 미만인 근로자
[자료 : 고용노동부]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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