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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사상의 좌표전환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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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평창올림픽의 북한 참가 문제를 둘러싼 2030세대의 사상 반란은 너무 신선해 충격적이다. 국가의 불공정과 끌려다님에 대한 당당한 저항은 구태에 찌든 관념과 세대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외환위기·월드컵·노무현을 거쳐 북핵·미사일·김정은, 그리고 세월호·촛불·탄핵을 거친 그들은 좌우 진영논리를 모두 무시하며 양쪽 모두를 강타하고 있다.

2030세대의 혐북과 염북을 #반공이나 진영논리로 해석 말라 #이들의 평창올림픽 사상 반란은 #좌우 민족주의의 구각을 깨도록 #앞 세대들에게 내리치는 죽비다

겉으로는 단순하다. 우리가 오래 준비해 대한민국과 세계가 만나는 국제스포츠 행사에 우리 선수들의 땀과 세계의 움직임보다는 막판에 갑자기 등장한 북한의 정치적·문화적 일거수일투족이 훨씬 더 주목 받고, 그들의 약속이행 여부가 올림픽 성패를 일정 부분 좌우할 단계에 다다른 상황을 2030세대는 용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속내는 훨씬 깊다. 먼저 국가와 개인의 관계다. 즉 당사자주의다. 이제 국가·국익과 같은 거대담론을 위한 개인의 인권·꿈·노력의 일방적 희생은 강요될 수 없다. 전체와 개인은 같이 발전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 타협은 당사자주의를 배제했다고 비판하면서 남북 단일팀엔 선수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는 이중성은 더욱 수용될 수 없다.

이번 세대 반란의 사상적 토대는 가장 중요하다. 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는 첫째, 통일에 대한 찬성이 평화에 대한 찬성보다 훨씬 낮다. 즉 통일 대신 평화다. 둘째, 통일 자체에 대한 찬성 비율 역시 반대보다 낮다. 즉 통일 대신 반(反)통일이자 상호 분리다. 셋째, 기성세대가 통일의 근거로 삼아 온 민족주의 통일담론의 파탄이다. 이들은 민족·역사·문화·언어가 같기에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실주의와 보편주의 통일 시야다.

북한의 시대착오적 세습과 인권유린, 핵과 미사일, 숱한 약속 파기로 인한 청년들의 혐북(嫌北)과 염북(厭北) 시각을 과거의 반공·반북주의나 진영논리로 해석해선 안 된다. 그들은 세월호와 촛불·탄핵을 체험한 철저한 개혁 열망 세대다. 따라서 지극히 실용적·개혁적·보편적이다.

중앙시평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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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남남·진영·좌우 갈등이 아니라 민주주의 대 세습독재, 인권 대 국가, 평화 대 통일의 보편지평을 획득한 세대다. 그러한 세대에게 협상과 대화에서 끌려다니는 모습은 자존감의 상처였다. 따라서 86세대가 민주화의 논리를 민족주의 통일논리로 왜곡해선 안 된다.

보편적 민주공화주의는 이른바 ‘세대 내’ 의제-주택·의료·부동산·소득·세금-보다는 ‘세대 초월적’/‘세대 지속적’ 의제-자유·인권·평화·교육·환경-에 대한 세대타협·세대공존을 통해 발전해 왔다. 중요한 점이다. 핵심적인 세대 지속적 의제, 즉 평등(양극화)·생명(출산율)·교육(대입)·평화(핵·미사일)·환경(미세먼지) 문제에서 다음 세대를 이미 가혹한 준(準)지옥 상태로 몰아넣는 범죄적 유산을 남겨준 86세대는 노겸(勞謙)해야 한다.

세대 내 의제의 이익을 독점한 불공정 세대가 다음 세대의 삶을 좌우할 세대 지속 의제마저 일방적으로 결정하려 든다면 2030의 반란은 머지않아 태풍이 될지 모른다. 2030세대에게 86세대의 민주화는 지나간 업적이다. 이제 세대 지속적 보편적 성취를 보여주어야 한다.

뉴욕·파리·베이징·도쿄를 자유로이 다니는 세대에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원산·신의주·함흥의 사람들, 특히 평양의 공산독재 세력과 같은 민족이니 잘 지내야 한다고 아무리 주입한들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그들이 필요로 해야 한다. 즉 실용이다. 출생 이후 그들에게 절반의 민족은 전혀 체험되지 않은 존재일 뿐만 아니라 외려 세습과 공산독재, 핵과 미사일로 자신들을 위협해 온 실체일 뿐이다. 사상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의 반영이다.

한국전쟁 세대는 소련·중국·북한을 포함한 전체주의에 대한 반대가 강했다면, 민주화운동 세대는 미국·일본을 포함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더 강했다. 반면에 전체주의에 대한 반대는 미약했거나 포용적이었다. 그들의 반제 민족주의 논리는 일부에서는 같은 민족인 전체주의 북한을 지지·추종하는 사상적 역전마저 가능하도록 했다. 민주화의 이름으로 전체주의를 추종하는 세계일탈적 민족주의였다.

2030세대의 상큼한 치받음을 계기로 보편으로 전환하자. 앞선 두 세대의 극단을 인권과 평화의 보편광장에서 통합할 그들의 관점을 수용할 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북한·북핵·남북관계·한반도평화의 실질적 해법을 안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 보편의 지평에서 좌우 민족주의의 구각을 깨도록 죽비를 내리쳐 준 그들이 너무 감사하다. 보편은 늘 당당하다. 늘 깔끔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