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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학 입시의 다원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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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

어떤 시장이 있다. 여기에는 상품의 공급자가 50만 명이 있는데 수요자는 60만 명이 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니 이 시장은 당연히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고 수요자들끼리 경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만일 공급자는 그대로 50만 명인데 수요자가 갑자기 30만 명으로 줄어들면 이 시장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시장은 더 이상 공급자 중심이 아니다. 물건의 가격도 조정되고 수요자들은 경쟁을 할 필요도 없다. 물건을 사고파는 시스템, 즉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다. 그런데 이런 시장이 정말로 존재할까?

3년 뒤부터 19세 인구 급감하면 #대학은 존재 자체가 어려워진다 #19세-수능의 획일적 대입은 #입학 정원 < 대입 수요 때의 유물 #대입 연령과 입시제도 다원화의 #새 패러다임이 발전적 생존 전략

매우 놀랍게도 실제로 존재한다. 그것도 정확히 3년 뒤 우리나라에서 발견될 것이다. 독자들께서는 어떤 시장인지 아시겠는가? 바로 우리나라의 대학 입학 시장이 그것이다. 지금 대학들은 매년 약 50만 명의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다. 이 자리를 놓고 5년 전에는 약 70만 명, 지난해엔 약 60만 명의 19세 인구가 경쟁했다. 앞으로 3년 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2002년생들이 19세가 되면 실제 대학에 진학하려는 사람의 수가 약 30만 명으로 급감하게 된다. 대입 제도가 생겨난 이래 입학 정원보다 진학하려는 사람의 수가 적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현재 교육부와 대학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는 전략을 마련했다. 교육부는 대학 구조 개혁을 통해 부실 대학들을 정리하고 있고, 대학들은 학과 통폐합 등의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넋 놓고 있지 않고 미리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교육부도 대학들도 대학 입시 패러다임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대학 입시제도 자체이다.

시장에서 수요가 대규모로, 그것도 갑자기 줄면 시장 작동의 기본 시스템이 바뀐다. 대학 입학 시장의 기본 시스템은 대학들이 학생들을 선발하는 입시제도다. 그러므로 대입 시장의 구조조정은 부실 대학 정리나 학과 통폐합으로 충분할 수 없다. 입시제도 자체의 구조 개혁 없이 천지개벽 수준의 대입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은 불가능하다.

그럼 대학 입시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필자가 볼 때 가장 필요한 변화는 현재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을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는 대학 입학 연령을 다원화하고, 수능고사와 학생부종합전형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지원자를 평가할 수 있도록 대학 입학시험도 다원화하는 것이다.

시평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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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진학해야만 하는 곳이다. 당연히 입학시험도 고등학교까지의 학업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대학을 가야 인생에서 성공할 것 같은데, 대학에 자리는 한정돼 있으니 전국의 모든 19세는 서로 경쟁한다.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교육은 필수가 되었고 공교육은 무용론이 나올 정도다. 언제나 19세 수요자가 넘쳐나는 시장에서 공급자인 대학은 뒷짐을 지고 있어도 된다.

하지만 19세 인구가 급감하는 3년 뒤부터 대학은 더 이상 뒷짐을 쥐고 있을 수 없다. 학생이 줄면 대학의 존재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제 19세만을 수요자로 받겠다고 고집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대학 입학 연령의 다원화를 대학이 먼저 요구해야 한다. 예컨대 고졸 후 수년간 사회활동을 한 청년이 대학에 가고 싶으면 지금의 제도에서는 수능을 다시 봐야 한다. 당연히 19세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 이 청년의 사회 경험이 수능 점수보다 가치가 낮거나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지만, 현행 제도에서 이 학생의 대입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교육부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다양한 연령대의 지원자를 대학들이 선발할 수 있도록 대입제도를 바꿔 줘야만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먼저 일을 하고 나중에 필요할 때 대학에 진학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는 10여 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19세에 맹목적으로 대학에 가는 것이 인재 양성에 유리하지도 않고, 과도한 사교육 문제, 청년실업, 저출산 등 수많은 사회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급자 중심의 대입 시장에서 주목을 받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제 시장의 상황이 180도 역전되면 먼저 취업하고 필요할 때 대학에 진학하는 방식으로의 변화는 가능하고도 남는다. 혹자는 서울의 상위권 대학은 예외가 될 거라 말하나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대학 입학 시장의 변화는 전국적이고 몇몇 대학만을 예외로 한 대입제도의 변경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 연령과 입학제도의 다원화는 새로운 대입 패러다임의 발전적 생존 전략이다. 교육부와 대학들의 주목을 기대한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