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우리 기업들 왜 자꾸 M&A 사냥감 되는거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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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흑기사, 백기사, 공격과 방어…. 중세 유럽의 전쟁 이야기에 등장하는 말 같지만 요즘 신문 경제 면에 자주 나옵니다.

특히 적대적인 기업 인수.합병(M&A)과 관련한 기사에 종종 쓰입니다. 적대적 M&A가 뭔지는 들어 보셨나요. 기업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힘으로 소유권과 경영권을 뺏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회사의 주식을 기업의 주인보다 많이 확보하면 기업을 인수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싸움은 총알 대신 돈을 쓰는 것이 다를 뿐, 전쟁입니다.

틴틴 여러분. 요즘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외국사람들이 한국 기업 사냥에 팔을 걷었어요. 지금 칼 아이칸이라는 미국 부자가 한국 기업인 KT&G(옛날 담배인삼공사)의 경영권을 놓고 현 경영진과 대결을 벌이고 있습니다. 칼 아이칸은 최근 KT&G의 주식 일부(6.5%)를 주식 시장에서 사 모았어요. 그 다음 우호 지분을 많이 확보해 경영권을 넘기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우호 지분이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주식을 말합니다. 이 때문에 멀쩡한 우리 기업이 외국 자본에 속절없이 넘어가지 않느냐고 걱정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몇 년 전 '타이거 펀드'라는 헤지펀드(짧은 시간 안에 이익을 올리려는 투자자본)가 SK텔레콤의 경영권을 위협했었고, 소버린이라는 미국 투자회사는 SK의 경영권을 넘본 적이 있지요. 경영권이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이 싸움에서 이들 외국 자본이 많은 이익을 챙겼어요.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면 주식값이 올라요. 서로 주식을 확보하려고 하니까 그렇죠. SK㈜ 지분을 판 소버린은 8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이익을 챙겼답니다. 외국 금융자본이 잇따라 우리 기업들을 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공격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주식회사 체제에서는 상대보다 단 한 주라도 주식을 많이 갖고 있거나, 자기 편을 들어줄 주주(우호세력)를 많이 확보하면 경영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대기업의 대주주가 갖고 있는 주식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이를 주식 지분율이 낮다고 합니다. 공격하는 쪽 입장에서는 그다지 많은 지분을 확보하지 않더라도 경영권을 뺏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헤지펀드는 이처럼 주식 분산이 잘돼 있고, 기업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은 회사를 노립니다. 이렇게 공격하다가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팔아 이익을 챙겨가기도 합니다.

가령 KT&G의 경우 공기업으로 있다가 민영화된 기업이라 딱히 내세울 만한 주인(대주주)이 없습니다. 국내 주요 주주라야 기업은행(6.5%), 우리사주조합(6.7%) 정도예요. 전체 지분의 60% 이상을 외국인이 갖고 있죠. KT&G의 최대주주도 외국 펀드입니다. 그러니 아이칸은 외국인 주주를 설득해 같은 편으로 많이 만들었답니다.

결국 KT&G는 주식분산이 잘 돼 있어 기업 투명성이 높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만큼 적대적 M&A에 취약하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불과 6.5%의 지분을 확보한 아이칸이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적대적 M&A 위협에 시달리는 회사는 KT&G뿐만 아닙니다. 포스코와 KT 등도 대주주의 주식보유 비율이 낮고 외국인의 비중이 높아 외국 자본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국 제일의 기업인 삼성전자도 기업사냥의 표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이처럼 쉽게 외국 금융자본의 공격에 노출되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업의 방어 수단을 만들어 주자는 지적이지요. 사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외국 돈이 많이 필요하게 됐고 이를 위해 외국 자본이 국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었지요. 우리 기업의 울타리를 거의 없앴습니다. 싸움이 공정하게 이뤄지려면 창과 방패가 비슷해야 하는데, 지금은 창(공격)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입니다.

이 때문에 대기업을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나 일부 경제 학자들은 적대적 M&A에 대한 각종 방어책을 기업들에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업들이 제대로 경영권을 지킬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길 바라는 것이죠. 물론 적대적 M&A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적대적 M&A는 무능하거나 부패한 경영인을 몰아내거나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기도 합니다. M&A 시도 과정에서 주가가 올라 주주들이 이익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대적 M&A를 무분별하게 허용했다가는 애써 키운 알토란 같은 국내 기업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지적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경영을 잘못하고 있는 기업까지 보호해서는 곤란하겠지만, 허술한 제도 때문에 우리 기업이 외국 자본의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힘을 얻고 있지요.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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