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양만 낸 직능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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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정당이 발표한 전국구후보 62명의 면면을 보면 직능별·연령별·지역별 균형을 맞추는데 애쓴 흔적이 보인다. 전국구제도가 원래 직능별 전문인력의 충원과 지역구가 없는 전국적 인물의 의회진출에 뜻이 있는 만큼 각계 인물을 골고루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민정당의 인선내용을 뜯어보면 대부분 당내 인사거나 범 여권 인물들로 대통령선거 유공자, 권력핵심과의 직·간접 인연을 가진 사람 등 이 많고 정말 그 분야를 대표한다고 할 만한 외부인사의 영입은 손꼽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외형상 직능별 균형을 갖춘 것처럼 보이나 실은 그들의 직능 대표적 성격은 별로 뚜렷하지 못하다는 인상이다. 또 노-장 청의 연령별 균형 같은 것을 지나치게 의식한 게 아닌가 싶은 부자연스런 느낌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이번 인선에서 볼 수 있는 민정당의 정국운영 구도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 관심사이나 노태우 대통령의 친정체제 강화 정도의 특징 밖에는 읽기가 힘들다. 주목할 만한 거물급 인사도 없고, 정치적으로 개성이 뚜렷한 인물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인선으로 민정당의 활성화나 당내 민주주의의 신장 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도 하기 어렵다.
앞으로 민정당이 공약한 권위주의청산과 활발한 의회정치, 정당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고위층의 눈치나 보고시키는 대로 만 따라가는 국회의원이어서는 곤란하다. 당내 민주주의도 위에서 하라고 해야 하는 시늉을 하고 본회의장소를 바꿔 날치기 통과를 하라고 해도 불평 없이 순종하는 의원 상으로는 권위주의 청산도 활발한 의회정치도 불가능하다.
지난날 전국구의원들의 원내활동은 지역구의원에 비해 떨어진 게 사실이고 출신 직능분야의 대표역할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었다. 새로 발탁된 전국구후보들은 이런 점을 잘 생각해 지역구출신이 발휘하기 어려운 전문성을 살리고 출신지역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는 장점도 최대로 살려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의견들이 모여 당론이 되고 당명이 된다는 줏대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전처럼 매사에 있어 당명을 기다려 수동적으로 움직이다가는 민정당의 거듭된 다짐과는 달리 제5공화국의 연장이 있을 뿐이다.
민정당은 이번 선거에서 야당분열의 어부지리로 대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발표된 62명의 전국구후보 중 별 이변이 없는 한 45명에 가까운 사람들은 이미 당선을 따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비록 당총재의 임명과도 비슷한 당선이지만 국민의 투표로 결정되는 의석비율에 따라 전국구의원도 당락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그 뿌리는 역시 국민이다. 전국구의원은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되며 자기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준 사람이 당총재 또는 당 간부라는 의식으로 의원직을 수행해서는 안될 것이다.
발탁된 전국구 후보들은 전국구본연의 취지에 부합하는 의원활동으로 전국구에 대한 일반의 사시를 씻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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