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서 물 안나왔다는 의혹에도 "블랙박스 공개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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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발생한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참사의 초기 진화 작업이 지연됐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소방당국이 해명에 나섰지만, 궁금증만 더 키웠다.

"화재 직후 도착한 소방차에서 물 안나왔다" 의혹일자 해명 #블랙박스·교신기록 공개한다더니 "신상정보 있어 곤란하다" #"CCTV영상 있다고 했는데 말실수였다"…해명 계속 뒤집혀

소방용수를 뿌리는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선착대의 교신 내용도 의혹을 풀 증거가 될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없다고 했다.

28일 오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인근에 마련된 임시 브리핑실에서 최만우 밀양소방서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밀양=김정석 기자

28일 오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인근에 마련된 임시 브리핑실에서 최만우 밀양소방서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밀양=김정석 기자

최만우 밀양소방서장을 비롯한 소방 관계자들을 28일 오전 세종병원 인근에서 진행된 브리핑을 통해 일각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25일 오전 7시32분 화재 신고를 받고 3분 만에 출동한 선착대가 곧바로 소방용수를 뿌리지 않고 10여분간 작업을 지체했다는 목격담에 대한 해명이었다.

앞서 불이 난 직후 일부 목격자들은 "소방차가 호스를 깔았는데 틀려고 하니까 물이 안 나왔다. 살수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5분 내지 10분 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의혹을 제기했었다.

최 서장은 화재 이틀째인 27일 처음으로 이에 대해 해명을 했다. 당시 그는 "1차 출동을 했던 가곡119안전센터 소방차가 (도착하자마자) 물을 뿌렸는데 탱크에 든 2000L의 물을 다 소진하고 후발대로부터 급수를 하는 과정에서 방수가 잠시 중단됐고 이를 시민들이 보고 오해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폐쇄회로TV(CCTV) 영상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물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이틀째인 27일 오후 최만우 밀양소방서장이 화재 인근에 마련된 임시 브리핑실에서 '사고 당일 소방차에서 물이 나오지 않은 의혹'에 동영상을 공개하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최 서장은 인명 구조에 인원을 우선 투입해, 현장 도착 후 2분 46초 만에 소방차에서 물을 내보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이틀째인 27일 오후 최만우 밀양소방서장이 화재 인근에 마련된 임시 브리핑실에서 '사고 당일 소방차에서 물이 나오지 않은 의혹'에 동영상을 공개하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최 서장은 인명 구조에 인원을 우선 투입해, 현장 도착 후 2분 46초 만에 소방차에서 물을 내보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어 최 서장은 이날 오후 두 번째로 도착한 소방차의 전면 블랙박스 영상을 언론에 일부 공개했다. 영상에는 두 번째 차가 도착하고 2분 46초 정도가 지난 후 소방호스 압력이 차면서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하려는 장면이 찍혀 있다. 구조대원들이 피해자들을 눕혀 놓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최 서장은 "후착대 소방대원들이 도착하자마자 요구조자 구조에 착수해 구급차에 싣기까지 2분46초가 걸렸고, 그 직후부터 소방호스에 수압이 차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영상으로는 가장 먼저 도착한 소방차의 소방용수가 바로 뿌려졌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두 번째 차가 도착 직후 물을 뿌리지 못한 이유만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선착대가 정상적으로 소방용수를 뿌렸는지 확인해 줄 영상은 있느냐'는 질문에 "어떤 형태의 영상을 확보하든지, 당시 진압대원의 자필확인서를 받든 증명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당시 선착대 무전 교신 내용 자료를 받아서 내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열린 브리핑에서 최 서장은 "블랙박스 영상이 있다"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기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소방차량에 영상장치를 설치하는 목적은 소방활동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고 시민의 신상정보도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오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소방 관계자들이 합동 정밀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27일 오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소방 관계자들이 합동 정밀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어 그는 "영상정보의 공개는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률 검토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앞으로 진행될 경찰 수사 상황에 계속 제공이 돼야 한다"면서 "수사기관이 영상정보를 요구하면 제출할 것이고 (소방서의 주장이) 허위라면 제3의 기관에 의해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소방차의 현장 도착 시각이나 진입 경로, 소방용수 사용 등 내용이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한 지휘본부와의 교신 기록이나 자체 영상 자료도 없었다.

김동룡 가곡119안전센터장은 "현장 상황이 긴박해서 지휘본부와 교신을 하지 않았다"며 "인력이 부족해서 영상 촬영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오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소방 관계자들이 합동 정밀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27일 오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소방 관계자들이 합동 정밀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계속해서 뒤집히는 밀양소방서 측의 해명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서장은 26일 오전 "CCTV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첫 번째로 도착한 소방차에서) 물이 나온다"고 말했지만 같은 날 오후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병원에서 가진 CCTV가 있다면 영상에 찍혀 있을 것'이라고 했어야 하는데 말을 잘못 전달했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대해 경남경찰청 김한수 형사과장은 "병원 내부를 비추고 있는 CCTV는 있지만 소방차가 도착해 물을 뿌리는 장면이 찍힌 CCTV는 없다. 주변 차량 블랙박스 영상도 찾고 있지만 아직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28일 브리핑에서도 역시 의혹을 해소시킬 만한 증거를 내놓겠다고 한 전날 이야기와 달리 아무 증거자료도 공개하지 않았다.

밀양=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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