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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실명확인 日서 체험…일주일 걸려 코인 샀는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은 암호화폐 취급과 관련해 지난해 4월 자금결제법을 개정하는 등 한국보다 발빠르게 대응해왔다. 암호화폐 거래를 위해선 본인확인이 필요하고, 거래소도 등록제로 제한해 금융당국이 자금의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오는 30일 한국도 암호화폐 거래에 실명확인제도 실시를 앞두고 있다. 실제 일본에선 암호화폐 거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직접 이용해봤다.

신분증 촬영→ '본인 확인' 이메일 10분만에 도착

우선 일본 내에서 사용자가 가장 많은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 플라이어(Bit Flyer)’에 가입했다. 이메일과 비밀번호만 설정하면 쉽게 가입절차를 시작할 수 있지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았다.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의 앞 뒷면을 찍어서 보내라고 요구했다. 사진을 찍어 보낸지 10분도 안돼 거래소 측에서 이메일이 왔다. 영어이름의 띄어쓰기를 틀리게 해 한 차례 승인이 거부됐지만, 금새 “신분증 확인이 완료됐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생각보다 진행이 빨랐다.

거래를 위해선 실명 통장도 필요했다. 그런데 은행계좌의 실명확인에는 시간이 걸렸다. “은행 계좌가 확인됐다”는 안내 메일은 이틀 뒤에나 도착했다. 이제 은행계좌를 통해 곧바로 암호화폐를 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물건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가입 절차를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거래시 확인 수속이 완료됐습니다" 라는 안내문이 도착했다. [사진=윤설영 특파원]

가입 절차를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거래시 확인 수속이 완료됐습니다" 라는 안내문이 도착했다. [사진=윤설영 특파원]

거래소에서 보내는 우편 등기물을 직접 수령했다는 게 확인돼야 비로소 물건 구입을 할 수 있었다. 디지털화폐를 이용하는데 인감 도장을 찍어야 하는 등기우편을 받아야 한다니 다소 구시대적이지만, 본인 인증을 확실히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거래소에 가입해 완전히 본인 확인이 될 때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널 뛰는 코인 가격에 물건 살 엄두 안나

여기까지 완료하면 암호화폐로 물건을 사는 건 어렵지 않다. 암호화폐를 받아주는 상점에 가서 물건을 고른 뒤, 현금 대신 휴대폰을 내밀면 된다. QR코드를 찍으면 물건가격이 코인으로 환산돼 그 금액만큼 결제하는 방식이다.

9530엔을 주고 산 비트코인이 현재 3283엔 하락했다. 2주 동안 코인의 가치가 약 30% 떨어진 것이다. [사진=윤설영 특파원]

9530엔을 주고 산 비트코인이 현재 3283엔 하락했다. 2주 동안 코인의 가치가 약 30% 떨어진 것이다. [사진=윤설영 특파원]

다만 코인의 가격이 너무 불안정해 물건을 사기가 망설여졌다. 처음 9593엔(9만3507원)을 주고 0.005비트코인을 샀다. 그런데 구매한 날부터 코인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약 2주동안 최대 4054엔, 무려 42%가 하락한 때도 있었다. (그 사이 한국에선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 폐쇄도 검토하겠다”고 발언한 일이 있었다.)

코인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물건을 사면 손해였다. 언젠간 코인값이 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코인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반대로 코인값이 급등해도 문제다. 코인값이 3배 올랐다고 했을 때, 1000엔을 주고 산 물건이 지금 가격으로 환산하면 3000엔을 주고 산 것과 다름 없으니 이래도 손해, 저래도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 안정성이 떨어져 아무래도 결제수단으로선 불안했다.

日 대기업ㆍ메가뱅크 등 20개사 합작거래소 설립

일본은 전국에 약 1만곳에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취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자제품 양판점인 빅카메라가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초 처음 비트코인을 취급하기 시작해, 현재는 전국 40개 매장으로 확대한 상태다. 결제금액의 상한도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10만엔에서 30만엔으로 늘렸다.

빅카메라 관계자는 “비트코인을 취급하기로 한 건 결제수단을 다양화 해서 손님들의 이용편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서 “비트코인 결제 고객은 하루에 한두명 정도일 때가 많지만 건수는 확실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안경점, 식당, 인터넷 쇼핑몰, 여관 등 암호화폐 취급점은 꾸준히 늘고 있다.

빅카메라 유락쵸(有?町)점에 비트코인으로 30만엔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윤설영 특파원]

빅카메라 유락쵸(有?町)점에 비트코인으로 30만엔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윤설영 특파원]

빅카메라 유락쵸(有?町)점에 비트코인으로 30만엔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윤설영 특파원]

빅카메라 유락쵸(有?町)점에 비트코인으로 30만엔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윤설영 특파원]

일본 대기업들도 암호화폐 결제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25일 통신회사인 인터넷 이니셔티브(IIJ)와 이토추 상사, JR 동일본, 미쓰비시도쿄 UFJ은행, 미쓰이스미토모 은행, 빅카메라, 야마토 홀딩스 등 20여개 기업이 합작해 거래소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 거래소는 고객이 인터넷상에서 디지털 통화를 보관·관리하는 ‘전자지갑’이라고 불리는 계좌를 통해 암호화폐를 거래하고, 일반 상점에서 지불수단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결제서비스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암호화폐로 교통카드도 충전할 수 있게 하고, 전자상거래 사이트와 연계해 암호화폐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미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이 1코인=1엔의 가치를 갖는 ‘MUFG코인’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등 일본은 암호화폐 사업개발에 적극적이다.

日서도 암호화폐 피해 사례 급증..."투기성 높아"

다만 일본에서도 암호화폐 거래로 인한 투기 피해는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소비생활센터에 접수된 암호화폐 관련 상담 건수는 2071건으로 전년도인 2016년에 비해 3.4배나 늘었다. 새로 발행된 암호화폐 값이 오를 테니 투자하라는 지인의 권유를 받고 40만엔을 송금했다가, 업자가 계좌를 폐쇄하고 잠적해버린다거나, 암호화폐 계좌가 해킹당했다는 등의 피해다.

일본 금융청의 사사키 시요타카(佐々木清隆) 총괄심의관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현행 법은 암호화폐를 교환수단과 결제수단으로 보고 있다. 금융상품거래법이 정하는 투자의 대상과는 다르다. 그러나 실제로는 투기적 색채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시타 나오유키(岩下直行) 교토대 교수는 닛케이 베리타스 인터뷰에서 “현재 가상통화는 투자적인 층면이 너무 강하다. 현 시점에서는 결제수단으로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비트코인은 (은행 등) 기존의 금융세력에 디지털 통화발행 등 기술혁신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거래가 복잡해 수수료가 많이 든다’는 기존의 서비스 제공자 측 논리는 통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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