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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문고리, MB의 집사 … 저격수로 돌아선 그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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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오랜 충신의 배신에 발목 잡힌 전직 대통령들

왼쪽부터 안종범,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왼쪽부터 안종범,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이명박 정권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설 연휴 전 검찰 소환설이 돈다. 검찰 수사 칼끝이 이 전 대통령을 향한 데는 이 전 대통령의 ‘영원한 집사’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검찰 진술이 결정적이었다는 얘기가 많다.

업무수첩, 태블릿 PC 등 증거 나오자 #윗선 보호하려다 불이익 당할 우려 #박근혜의 참모들 “시켜서 했다” 실토 #저축은행 수뢰 구속 김희중 전 실장 #아내 장례식 조문 안 오자 등 돌려 #MB 정부 국정원 특활비 상납 증언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 의혹 사건도 ‘문고리 3인방’의 진술이 실체 규명에 큰 몫을 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복의 탄환에 스러진 트라우마가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결정적 순간 돌아선 핵심 참모들의 검찰 진술에 꼼짝 없이 발목을 잡히고 만 모습이다.

살아있는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던 ‘문고리’들이 권력 교체기에 ‘주군과의 결별’을 택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복심(腹心)’일수록 정치적 결별이 주군에게 미친 상처는 깊고 날카로웠다.

전직 대통령의 주변 최측근 인사들이 돌아서는 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들이 주군에 등을 돌린 이유는 복잡하고 다면적이었다. 인간적인 실망감이 내면에 자리잡거나 검찰 수사의 압박에 무너져내린 경우가 있었다. 정치적 지향점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경우도 있었다.

전 대통령 발목 잡은 최측근들의 증언

전 대통령 발목 잡은 최측근들의 증언

①유력한 증거 앞에 고개 떨군 측근들=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국정농단 사건 초기에는 혐의를 부인하다 결국에는 “대통령이 시킨 일”이라고 진술을 바꿨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2016년 11월 초 검찰 수사에 대비하면서 측근을 통해 “재단 설립과 모금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 지시로 한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검찰에서 “최순실 태블릿 PC 속 문건을 최순실에게 전달한 게 맞다”고 진술한 사실이 지난해 1월 18일 재판에서 공개된 바 있다. 국정원 특활비의 청와대 상납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지난해 11월 2일 검찰 조사에서 “대통령 지시로 특활비를 받았다”고 시인했다.

안 전 수석과 문고리 3인방은 검찰이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며 압박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혐의를 시인한 케이스로 분류된다. 안 전 수석에게는 자신이 직접 쓴 업무수첩이, 정 전 비서관에게는 최순실 태블릿 PC가 ‘스모킹 건’이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윗선의 혐의를 불지 않으면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검찰의 플리바게닝(수사 협조 대가로 검찰이 형량을 낮춰주는 일종의 거래)에 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특검 도우미’로 불린 장시호씨와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도 플리바게닝에 응해 수사에 협조했다.

②인간적인 실망감에 결별 선택=이명박 정부 특활비 상납 의혹 수사에서는 김희중 전 실장의 협조가 결정적이었다. 김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대통령의 해외출장 때 국정원에서 받은 특활비를 달러로 바꿔 대통령과 영부인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배신감이나 복수 때문에 (검찰 진술에) 나선 것은 아니다”면서도 “섭섭함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의 ‘섭섭함’은 뭘까. 한때 친이(친이명박)계 핵심이었던 정두언 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은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의 관계가 틀어진 시점을 2012년 저축은행 사건 때로 꼽았다. 정 전 의원은 “김 전 실장이 저축은행 사건으로 구속돼 있는 기간에 그의 아내가 생활고로 목숨을 끊었지만 이 전 대통령이 장례식에 오지 않자 섭섭해 했다”고 말했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다 실망해 ‘박근혜 저격수’로 변신한 케이스다. 전 전 의원은 2005년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일 때 대변인으로 활약했지만 2007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 편으로 돌아섰다. 전 전 의원은 2012년 1월 펴낸 자서전 『i전여옥』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실망했던 느낌을 “말 배우는 어린아이들이나 쓰는 화법”, “사람에 대해 따뜻하지 않고 업무 방식이 비민주적” 등으로 기술했다.

③가치관의 변화나 이해관계의 충돌=2015년 11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부친 장례식장에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유)승민이하고 이혜훈이하고 진짜 열심히 했는데 다 멀어져가네.”

2인자를 두지 않으려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에게 반기를 들며 세력을 키운 바른정당 유승민·이혜훈 의원은 정치적 지향점이 완전히 달라진 경우다.

물리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비수로 돌아온 경우도 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해 당선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렇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선거 기획을 담당했던 6급 비서관 김모씨는 이명박 의원 당선 넉 달 뒤인 그 해 9월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당사에서 “이(명박) 의원이 총선 때 법정선거비용 9500만원을 초과한 6억8000만원을 썼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항소심 법원에서 당선무효 판결(벌금 400만원)이 나오자 이 전 대통령은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수사 결과 김씨는 이 전 대통령에게 5급 비서관 승진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야당에 사건을 제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권력의 형성과 소멸 국면에서 사적이든 정치적이든 자신의 이익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과거부터 반복된 정치 현상”이라며 “한국 정치에서 권위주의적 리더십보다 이해타산의 이합집산이 빈번해지는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 BOX] 전두환의 장세동, DJ의 권노갑 … 끝까지 의리지킨 측근들

장세동

장세동

전직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보스와 정치적 결별을 택하는 일이 이어지면서 정치권에서는 과거 주군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했던 인사들 얘기가 심심찮게 거론된다. 대표적인 ‘의리의 돌쇠’ 유형으로 꼽히는 인물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충복 장세동(사진) 전 안기부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포상고 4년 후배인 권노갑 국민의당 상임고문이다.

전 전 대통령은 국회 청문회와 재판을 통해 역사의 단죄를 받았지만 ‘영원한 충복’ 장 전 부장은 끝까지 주군을 배신하지 않았다. 장 전 부장은 1988년 제5공화국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준 사람을 위해 죽는 법이다”며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어도 각하가 구속되는 것은 막겠다”고 말했다.

권 상임고문은 1961년 김 전 대통령이 강원도 인제에서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할 때 비서로 모시기 시작해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할 때까지 50년 가까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정치적 운명을 함께한 분신이다. 권 상임고문은 자신의 묘비에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14자만 새기면 족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 상임고문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보안사에 체포돼 고문 등 고초를 겪었고 한보 사건, 진승현 게이트, 현대 비자금 사건 등에 연루돼 감옥을 3번 다녀왔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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