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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다보스포럼의 명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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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문명의 충돌』의 저자인 고(故)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는 2004년 개별 국가보다 세계 경제의 통합과 번영을 중시하는 글로벌 엘리트를 ‘다보스 맨(Davos man)’으로 명명했다. 이들에게 국경은 사라지고 있는 장벽이고, 정부는 과거의 유산이다. 정부의 유일한 역할은 글로벌 엘리트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일뿐이다. 다보스 맨은 세계화의 흐름을 주도해 온 다보스포럼에서 따온 말이다.

오늘부터 26일까지 다보스포럼이 스위스 알프스의 시골마을 다보스에서 열린다. 올해로 48회째다. 주최 측이 내세우는 다보스포럼의 성공사는 화려하다. 1987년 포럼 연단에 오른 한스디트리히 겐셔 독일 외교장관은 “고르바초프에게 기회를 주자”고 말했고 같은 해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장벽을 허물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 89년 한스 모드로프 동독 총리와 헬무트 콜 서독 총리가 통일 문제를 다보스에서 협상했다. 결국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그해 무너졌다. 88년에는 석유 시추 문제로 갈등을 빚던 그리스와 터키의 ‘다보스 선언’을 이끌어내 전쟁을 막았다. 넬슨 만델라와 그를 석방한 남아공 데 클레르크 대통령이 함께 국제무대에 등장한 것도 92년 다보스였다.

찬사만 있는 건 아니다. 비영리단체이면서 포럼 회비와 참가비로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너무 상업적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보스에서 세계 경제의 향방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그해 중요한 흐름은 꼭 놓친다는 냉소도 있다. 다보스는 소련의 붕괴도, 90년대 남미·러시아 위기와 아시아 금융 위기도, 기술주 거품도 예측하지 못했다.

지난해 다보스의 주인공은 개방과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었다. “보호주의는 어두운 방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 등의 화려한 언사로 주목받았지만 듣기 좋은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받았다. 올해 포럼의 주제는 ‘분절된 세계 속 공유의 미래 창조’다. ‘분절된 세계’에 큰 책임이 있고 다보스 맨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트럼프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론 18년 만에 다보스를 찾아 폐막 연설을 할 예정이다. 예산안 처리 실패로 연방정부 업무가 일시정지돼 참석이 쉽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세계화에 반대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가 ‘다보스 맨’ 앞에 선다면 그 자체가 뉴스감이다. 다보스에서 시진핑·트럼프 같은 국가주의자가 주인공이 되는 현실을 보면 하늘나라의 헌팅턴 교수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