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값의 역설] 내신 절대평가·학점제 … 강남 불이익 되레 없애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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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8학군 대체재 자사고·외고 폐지의 역설

새 정부에서 추진 중인 교육정책이 강남 8학군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오후 10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학생들 모습. [중앙포토]

새 정부에서 추진 중인 교육정책이 강남 8학군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오후 10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학생들 모습. [중앙포토]

새 정부에서 나온 교육정책은 강남 8학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교육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 중인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우선선발권 폐지, 고교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고교학점제 등은 강남 8학군에 유리하면 유리했지 절대 불리한 정책이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새 정부 교육정책, 강남에 미치는 영향 살펴보니 #“자사고 폐지, 강남 쏠림 부추겨” #내신 절대평가도 강남에 유리 #전문가들 “강북 일반고 경쟁력 높이는 게 우선”

‘강남 8학군 부활’ 우려를 낳은 대표적 정책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우선선발권 폐지다. 교육부는 올해 중3이 되는 학생부턴 이들 학교의 모집 시기를 전기에서 후기로 돌려 일반고와 동일하게 했다.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일반고보다 한발 앞서 우수한 신입생을 선점하면서 설립 취지와 다르게 고교서열화와 사교육 조장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논리에서다.

 지난해 8월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이후 다소 진정세를 보였던 강남 집값 상승세가 12월 급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시기에 정부의 자사고·특목고 우선선발권 폐지가 확정 발표된 바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해 8월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이후 다소 진정세를 보였던 강남 집값 상승세가 12월 급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시기에 정부의 자사고·특목고 우선선발권 폐지가 확정 발표된 바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서울 지역 전역에서 지원이 가능한 자사고를 2010년 이후로 설립한 이유는 강남 이외 지역에도 우수한 고교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며 “강남 8학군 쏠림과 강남·북 간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었는데 왜 다시 거꾸로 가려는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사고·외고 폐지가 서울·지방 간 교육 격차를 벌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비평준화 지역에 있는 공립 외고는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로 자리 잡았다. 이런 교육적 기능을 무시한 채 자사고들의 문제점만 극대화해 폐지를 추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데이터 시각화=배여운 분석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데이터 시각화=배여운 분석가

고교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역시 강남 8학군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현재의 내신 상대평가에선 강남에 우수한 학생이 많이 몰리면 서로 간에 경쟁이 치열해 내신에선 불리할 수 있다. 그러나 내신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이런 불리한 점이 사라진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교육평가연구소장은 “내신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강남에 있는 고교나 지방에 있는 고교나 90점을 받으면 똑같이 1등급이다. 강남 지역으로 쏠림현상이 현재보다 더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전 총장)도 “내신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내신의 변별력이 떨어져 대학에서는 면접과 논술 같은 대학별 고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대입 경쟁력이 높고 사교육 인프라가 좋은 강남 지역에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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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추진 중인 ‘고교학점제’ 역시 강남 지역 학교에 유리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들이 교과를 선택하고 강의실을 다니며 수업을 듣고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이수하는 제도다. 신동원 휘문고 교장은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교육 과정은 물론 학교 시설, 교원 수급 등 많은 것이 달라져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학교가 많지 않다. 우수한 교육 여건과 인프라, 진학 노하우를 가진 강남 지역 고교의 경쟁력이 더욱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강남 쏠림 현상을 막을 대안은 없을까. 교육 전문가와 교사들은 “지역 간, 학교 간의 격차를 줄이지 않고는 강남 집값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국의 모든 고교를 현재 외고·자사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학생들은 어디에서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집값이 비싼 강남으로 이사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오세목(서울 중동고 교장) 전국자사고연합회장은 “일반고 수준을 자사고·외고·국제고만큼 끌어올리면 학부모들은 당연히 학비가 저렴한 일반고에 대한 선호도가 올라간다. 정부의 자사고 등 폐지 추진 정책은 앞뒤가 바뀌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자사고 등이 없어지면 우수한 학생들이 일반고에 골고루 배정되고 일반고 침체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덧붙였다.

고교 신입생 배정 시 서울 전역에서 뽑는 비율을 현재보다 넓히자는 주장도 나온다. 강남 8학군 고교의 문턱을 낮추자는 것이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일반고 배정에서 이 비율을 현재의 20%에서 40%까지 늘리자고 제안하고 있다.

고교학점제 도입 시에도 학교 간의 담장을 허무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제영 교수는 “외국어에 관심 있는 학생은 외고에서, 과학에 흥미를 느끼는 학생은 과학고에서 심화 과정을 들을 수 있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온라인 교육이나 대학 연계 프로그램 등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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