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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정은순 짝은 선수 아닌 감독 … 깃대 위쪽 잡기 경쟁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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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호 25면

평창 남북 공동입장 계기로 본 ‘공동기수의 추억’

‘남북 공동기수’ 한국 정은순(오른쪽)과 북한 박정철이 2000년 9월 15일 시드니올림픽 개회식에서 10만여 관중의 기립박수 속에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보다 깃대 위쪽을 잡으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키 1m78㎝인 박정철보다 더 큰 1m85㎝ 정은순이 위쪽을 잡았다. [연합뉴스]

‘남북 공동기수’ 한국 정은순(오른쪽)과 북한 박정철이 2000년 9월 15일 시드니올림픽 개회식에서 10만여 관중의 기립박수 속에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보다 깃대 위쪽을 잡으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키 1m78㎝인 박정철보다 더 큰 1m85㎝ 정은순이 위쪽을 잡았다. [연합뉴스]

다음 달 9일 열리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엔 태극기도 인공기도 없다. 지난 17일 열린 차관급 남북회담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 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남북이 국제대회에서 공동입장 하는 건 2007년 중국 창춘 겨울아시안게임 이후 11년 만이다.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과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이하 U대회)에서 각각 남쪽 대표로 공동기수를 맡았던 정은순(47·KBS N스포츠 농구 해설위원)과 최태웅(43·남자배구 현대캐피탈 감독)에게서 ‘한반도기의 추억’을 들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은순] #배구·농구 출전권 못 딴 북한 #키 큰 선수 없어 178㎝ 감독이 나서 #관중 기립박수에 소름, 우는 임원도 #[2003년 대구 U대회 최태웅] #북 기수, 깃발 놓고 응원단쪽 달려가 #이벤트에만 관심 쏠리는 건 아쉬워

남북 공동입장이 처음 이뤄진 건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이다. 이후 2002년 부산 여름아시안게임, 2003년 아오모리 겨울아시안게임과 대구 U대회, 2004년 아테네 여름올림픽,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안게임과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과 도하 여름아시안게임, 2007년 창춘 겨울아시안게임에서 남북 선수단이 손을 맞잡고 함께 입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도 공동입장을 추진할 예정이다.

기수로는 남과 북이 1명씩, 남녀를 내세웠다. 시드니 올림픽에선 남녀북남(南女北南)이 깃발을 들었다. 이후엔 남녀북남(南女北男)→남남북녀(南男北女)로 번갈아 가며 구성했다. 마지막 공동입장이었던 창춘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측이 오재은(여자 알파인스키), 북측이 이금성(남자 아이스하키)이었던 만큼 평창에선 남남북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남자 아이스하키 주장 박우상(33·1m91㎝)과 스노보드 메달 기대주 이상호(23·1m80㎝)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북한은 피겨 페어의 염대옥(19·1m51㎝)이나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기수로 나설 수 있다.

‘공동입장인데 왜 이런 싸움 시키나’

2003년 8월 21일 대구 유니버시아드 개회식에 한반도기를 들고 한국 남자배구 최태웅(오른쪽)과 북한 여자펜싱 김혜영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8월 21일 대구 유니버시아드 개회식에 한반도기를 들고 한국 남자배구 최태웅(오른쪽)과 북한 여자펜싱 김혜영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기수는 주로 실력이 뛰어나고 키가 큰 선수들이 나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1m90㎝ 장성호(유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2m 윤경신(핸드볼)이 한국 대표단 기수로 나섰다.

여자농구 센터 포지션인 정은순도 1m85㎝ 장신인데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2번이나 따내는 등 경력도 화려해 기수로 안성맞춤이었다. 정 위원은 “시드니에 도착해서 훈련하다 기수가 됐다고 통보받았다. 개회식 다음 날 8강 진출을 다투는 상대인 폴란드전이 있어 ‘공동기수를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유수종 당시 감독님이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라’고 하셔서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한국은 폴란드에 62-77로 패했다. 주장이었던 정 위원은 “나 때문에 졌다. 선수들에게 피해 주는 거 같아서 미안했다. 당시 폴란드에 키 2m16㎝ 선수(말고자타 디테크)가 있었다. 나보다 30㎝ 큰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다. 다행히 한국은 강호 러시아를 꺾고 4강까지 올랐다.

장신 정 위원이 기수로 나서는 바람에 북한은 선수가 아닌 감독을 기수로 내세웠다. 정 위원은 “당시 북한은 농구와 배구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해 키가 큰 선수가 없었다. 북한은 원래 다른 선수였다가 한국에서 내가 나온다고 하자 박정철 감독(유도)으로 바뀌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박정철 감독의 키는 1m78㎝ 정도였다.

정 위원은 “입장 순서를 기다리면서 박 감독님과 일상적인 이야기만 했다. ‘시합이 언제냐’, ‘언제 왔느냐’ 정도였다. 지도자다 보니 대화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어 그는 “‘한반도기 깃대 위쪽을 잡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박정철 감독도 똑같이 위를 잡으려고 했다. ‘나만 그런 주문을 받은 게 아니구나’란 생각을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남북 화합의 장이라더니 왜 이런 싸움을 시키나’ 싶었다”면서도 “그래도 내 키가 크니까 위를 잡았다”며 웃었다.

최 감독은 “개막 열흘 전쯤 공동기수로 선정됐다고 전달 받았다. 남북 분위기가 좋을 때였다”며 “배구는 북한 남자 팀과 경기한 적이 없어 두려움과 설렘도 조금 있었지만 영광스럽고 감사했다”고 기억했다.

세터인 최 감독의 키는 1m85㎝다. 북한은 펜싱 플뢰레 대표 김혜영(39)을 낙점했다. 어릴 때 농구를 했던 김혜영의 키는 1m70㎝였다. 최 감독도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 했다. 민감한 부분도 있다 보니 편한 이야기만 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이어 대구 U대회에도 303명의 ‘미녀 응원단’을 보냈다. 최태웅은 “개회식에서 깃발을 함께 들고 가다가 북한 기수가 중간에 흥분했는지 깃발을 놓고 가버렸다. 북한 응원단이 박수를 보내자 그쪽으로 가서 손을 흔들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최 감독은 “어색하게 혼자서 깃발을 들고 입장했다. 둘이 들다 혼자 드니 깃발이 무겁긴 했다”고 미소 지었다.

최 감독은 “북쪽 응원단이 배구장을 찾아 우리 선수들을 열렬하게 응원해 줘 고마웠다”면서도 “사진기자들이 코트를 등지고 응원단만 찍었다. 선수들보다 미녀 응원단에 관심이 쏠렸다”고 아쉬워했다. 대구 U대회에서 남자배구는 남북 응원단의 공동 응원 속에 결승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농구 식스맨도 벤치 앉으면 속상한데 …

정 위원은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이 공동입장 할 때 모든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한 바퀴를 도는 내내 멈추지 않았다. 소름이 돋았다. 눈물을 흘리는 임원도 있었다. 남북문제가 세계적인 이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며 “공동입장하는 사진이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 이번 공동입장도 역사의 한 획을 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입장하는 내내 벅찬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리얼미터가 17일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평창올림픽 개회식 때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40.5%였다. 반면 ‘한국은 태극기를, 북한은 인공기를 각각 들고 입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49.4%였다.

정 위원은 “개인적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경우 아쉬움은 있다. 농구 식스맨(후보)도 벤치에 앉으면 속상한데, 평생 올림픽만 바라본 우리 선수 중 못 뛰는 선수가 나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효경·박린 기자 kaypubb@joongang.co.kr

1991년 탁구·축구 단일팀엔 ‘준비’‘교감’있었다

역대 남북 단일팀은 두 차례 있었다. 한국의 현정화(50·렛츠런 탁구단 감독)와 북한 이분희(51)가 호흡을 맞춘 여자 탁구 단일팀은 1991년 5월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그해 7월 한국의 조진호(작고)와 북한 최철(46) 등이 출전한 축구 단일팀은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8강에 올랐다.

탁구는 한 팀 엔트리가 5명인데 당시엔 국제탁구연맹이 남북한 5명씩 총 10명이 출전하도록 배려해줬다. 축구 단일팀은 엔트리가 18명이었는데 한국 9명, 북한 9명 동수로 팀을 구성했다.

탁구 단일팀은 일본에 모여 45일간 훈련했다. 축구 단일팀은 평양과 서울에서 1주일씩 훈련한 뒤 포르투갈에서 2주간 최종훈련을 했다.

현 감독은 “버스로 이동할 때 (배우 주현의) ‘야 이 자식아~’ 라는 유행어를 가르쳐줬고, 북한 선수들이 따라 했다”고 회고했다. 축구 대표팀은 숙소의 층을 달리하고 훈련 때만 모였는데, 한국 선수들은 북한 선수와 친해져 몰래 방에 놀러 가기도 했다.

현 감독은 “대회 후 남북 선수들 모두 엉엉 울었다. 분희 언니한테 남북 단일팀의 추억을 잊지 말라는 뜻에서 금반지 선물을 건넸다”고 말했다.

북한은 3월 평창 패럴림픽에도 대표단을 보낼 계획인데, 현 감독은 은퇴 후 처음으로 이분희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과 재회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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