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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대거 기용 「진보 변신」 시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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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평민당은 30일 발표한 1차 공천자 1백 51명 가운데 재야운동권을 대폭 수용함으로써 진보적 정당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평민당은 이번 공천에서 급진적인 성향을 보여온 「투사형」 재야인사들을 기용하고 구 야당형 인사들을 탈락시킴으로써 온건보수적인 민주당과 분명하게 비교되는 야당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조짐은 7인의 조직강화 특위에 임채정·이길재·이해찬씨 등 재야입당파 3명이 들어갔을 때부터 예견됐던 것으로 어떤 면에서는 지난 2월 재야입당 당시의 합의인 50대 50의 배분정신에 충실했고 그 원칙에 따른 체질 변화가 이뤄진 셈이다.
문동환·박영숙씨 등 재야출신 중진의 출마기피 현상도 있긴 했으나 이 같은 급진적 인사들의 대폭 공천은 세대 교체와 체질 개선이라는 목적이외에도 총선 이후의 정국 개편까지도 겨냥한 김대중 전 총재의 「개인구상」이 작용됐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 전 총재는 총선 이후 지자제 전면실시 투쟁 및 올림픽 이후 노태우 정권의 재신임을 묻는 「기회」에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구도아래 사회저변의 비판적 반체제적 흐름에 주목하고 있어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진보적 재야인사를 대폭 공천했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유력하다.
그러나 이 같은 「재야 우대」는 결과적으로 구 야당형 당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당료파들이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다」며 격한 반발을 보여 심한 공천 후유증을 낳았다.
이런 새로운 평민당의 변화를 유권자들이 어떻게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미지수이며 당내 우려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제도권 정당이 재야인사를 대거 기용한 것은 온통 보수적인 기존 정치판에서 진보적 정당으로 변혁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도 없지 않다.
특히 이들 중 일부가 총선을 거쳐 원내에 진출할 경우 기존 정치 형태에 변화의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평민당이 이번 공천에서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것도 일단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기본적으로는 내놓을 만한 「주자」를 찾지 못해 종로 츨마 포기를 선언했지만 평민당은 이를 통해 그 동안 야당 통합을 반대한 것이 평민당이라는 나쁜 이미지를 씻어보려는 것 같다.
상징적인데 불과하지만 그래도 야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연합공천」을 시도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민당의 공천 작업은 소리도 많았고 갈등도 컸다. 막판에 김 전 총재가 직접 개입, 교통 정리를 했어야 했을 만큼 당내파와 재야파간의 심한 진통을 거듭, 당료파들로부터 「재야 횡포 현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2월 1일 98명이 입당한 재야파는 이번에 23명이 공천 신청을 해서 18명이 공천을 따내는 저력을 보였고 「준재야」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뿐 아니라 공천 획득자 대부분이 이른바 「노른자위」를 휩쓸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함평-영광의 3선 이진연 의원이 「무명」에 가까운 서경원 전 가톨릭농민 회장에 밀린 것은 『재야가 당의 새로운 실세로 등장했다』는 차원을 넘어서 『재야가 평민당을 삼켰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서울의 강금식(성동 갑), 이상수(중낭 갑), 임채정(노원 을), 김학민(서대문 갑), 이해찬(관악 갑), 고광진(동대문 을), 양성우(양천 갑), 이동철(도봉 을)씨와 지방의 정상용(광주 서갑), 김용석(인천 북갑), 박석무(무안)씨 등이 「재야 몫」으로 낙점을 받았다. 여기에 「준재야」격인 박상천(고흥)·오탄(전주 갑)·조찬형(남원) 변호사와 이찬구(성남 을)·유인학(영암) 교수, 그리고 조순승 미 미주리대 교수(승주-구례) 등이 영입됐다.
또 권노갑(목포), 이협(이리), 김경재(강남 갑), 이석현(안양을), 한화갑(신안)씨 등 김 전 총재의 측근 참모들에 대한 대거 공천는 총선 이후까지도 고려한 「포석」인 듯 하다.
평민당의 총선 전략은 김 전 총재의 절대적 지지 기반인 호남을 휩쓸고 재야를 내세워 서울 및 경인지역에 야당 바람을 일으켜 제 1 야당이 된다는데 초점이 모아져 있다. 이번 공천도 그 같은 전략을 뒷받침 하자는 데 주안점을 둔 것 같다. 운동권 출신 후보자를 서울대·연대·고대 등 3개 대학지역에 거점 배치한 것이나 이른바 야권 내 「때묻은」 구 정치인을 구체적으로 지목해 투쟁력이 강한 신진운동 세력을 맞붙게 한 구도 등도 「바람 작전」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작전은 결국 민주당과 제 1 야당 싸움으로 번져 야권 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없지도 않다.
평민당 공천에서 지적 될 또 다른 문제는 호남에서 「인물 홍수」 현상을 보인 것과는 반대로 영남의 35개, 강원·충남북의 13개 지역은 한 명의 신청자도 없어 무주공산 지역으로 남게된 심한 지역 편중 현상이다.
평민당이 보인 진보적 정당으로의 변신 시도, 제 1 야당을 놓고 벌이는 민주·평민당간의 싸움 등이 유권자에게 어떻게 비칠까가 주목된다. <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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