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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소방호스로 만든 가방 … 수익 10% 소방관 지원 “열악한 형편 개선돼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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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규동 파이어마커스 대표

‘파이어마커스’의 이규동 대표. 서울·경기 지역 50여개 소방서에서 폐 소방호스를 수거 해 패션 잡화를 제작하고, 수익금 중 일부는 소방관들을 위해 기부한다. [김상선 기자]

‘파이어마커스’의 이규동 대표. 서울·경기 지역 50여개 소방서에서 폐 소방호스를 수거 해 패션 잡화를 제작하고, 수익금 중 일부는 소방관들을 위해 기부한다. [김상선 기자]

이규동(30)씨는 소방관인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30년 넘게 재직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들었던 얘기는 무거웠다.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얘기, 동료가 화재 현장에서 숨진 얘기…. 그럼에도 아버지는 직업을 자랑스러워했고, 언제나 소방관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이씨도 자연스럽게 소방관을 꿈꿨지만, 1년 여간 준비했던 시험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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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슬프지 않다. 다른 방법으로 소방관에게 힘을 보태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이씨는 폐 소방호스를 이용해 잡화를 만드는 패션브랜드 ‘파이어마커스’를 설립했고, 이를 통해 소방관에 대한 처우와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다. 이씨는 “소방관 시험에서 떨어진 뒤 새 길을 찾아 창업하는 과정에서 폐 소방호스를 이용해 가방을 만드는 외국 사례를 접했다”고 말했다. 파이어마커스는 서울·경기권 소방서 50곳에서 15m 길이의 폐 소방호스를 수거해 가방·지갑 등 패션 잡화를 만든다. 이씨는 “소방서마다 차이가 크지만, 화재 출동이 많은 소방서는 1년에 100개 정도의 헌 소방 호스를 폐기한다”면서 “소방서는 폐기물 처리 비용을 줄여 예산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파이어마커스는 소방 호스 업사이클링 제품과 일반 제품을 함께 판매한다. 가격은 일반 제품은 1만~10만원, 수거·세척·가공 비용이 드는 업사이클링 제품은 10만~30만원 정도다. 판매 수익의 10%로 소방장갑 등 소모 물품을 구입, 화상 환자 지원 재단인 베스티안 재단을 통해 소방서에 전달하고 있다.

이씨는 “소방관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긴 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열악하다”며 “무작정 자기 강아지 구하라며 불길에 등 떠밀고, 구조 때문에 부순 문 값 물어내라고 따지기 일쑤다”고 말했다. 그가 소방관 인식 개선을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이어가는 이유다.

이씨는 소방관을 그린 작가들의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었고, 소방서 주차장을 빌려 동네 주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소방관 직업 체험 행사도 했다. 팔고 있는 패션 잡화에 관련 문구를 새기기도 한다. ‘DEVOTION NEVER FAILS(헌신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First In, Last Out(처음에 가서 마지막에 나온다)’ 등이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등 ‘소방관의 기도문’ 문구를 새겨넣은 에코백도 있다.

이씨는 자신의 활동이 소방관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 명의 소방관이 1325명의 시민을 책임지고 있다”며 “우리의 메시지가 단 50명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면 소방관도, 시민도 더욱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인식 개선 프로젝트를 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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