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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글로컬] 잇단 비리·구설로 웃음거리 된 ‘하회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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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

양반=“학식이 있어야지, 학식이. 나는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네.”

선비=“뭐 그까짓 사서삼경 가지고. 나는 팔서육경을 다 읽었네.”

양반 =“뭐? 팔서육경? 도대체 팔서는 어디에 있으며 그래 대관절 육경은 또 뭔가?”

초랭이=“나도 아는 육경 그것도 몰라요? 팔만대장경, 땡초중의 바라경, 봉사 안경, 약국의 길경, 처녀의 월경, 머슴의 세경….”

하회별신굿탈놀이 ‘양반선비마당’ 중 한 장면이다. 양반의 하인인 초랭이는 탈놀이 내내 지배계층의 허세를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민중의 억눌린 감정과 불만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주 무대는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이다. 12세기부터 시작된 이 탈놀이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인들이 하회마을을 찾는다. 2010년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관광객은 더 늘었다.

하지만 최근 하회마을은 거꾸로 웃음거리가 됐다. 하회마을보존회 임원들이 수년간 저질러 온 비리가 드러나면서다.

지난 14일 하회마을보존회 이사장 A씨(61)와 사무국장 B씨(49)가 횡령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하회마을 선착장에서 부용대를 오가는 나룻배 운영자로부터 영업 대가로 500만원을 뜯어내고, 하회마을 정비사업 공사업체들로부터 임대료 명목으로 300만원을 받아 개인적으로 받아 챙긴 혐의다. 안동시청 공무원 C씨(58)에게 국고 보조금으로 모두 3200만원에 달하는 뇌물을 준 사실도 드러났다.

하회마을은 주민들이 보존회를 구성해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주민자치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 관의 개입을 최소화했다. 보존회는 이런 운영상의 자율성을 악용해 비리를 저질렀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다.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별명을 가진 안동시는 하회마을에서 반복되는 구설들로 이미지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하회마을이 아예 ‘비리마을’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보존회의 강도 높은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안동시와 경상북도 역시 운영 감독을 강화하고 마을 운영의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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