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127] 보약 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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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 이제 가을입니다. 늦은 저녁 벌레 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올 여름 더위와 잦은 비에 심신이 많이 지치지는 않으셨는지요?

가을이 되면 보약을 먹는 분이 많은데 어떤 이들은 지치기 쉬운 여름에 먹는 것이 더 낫다고도 하더군요.

요즘은 약을 미리 달여서 봉지에 넣어 하나씩 먹도록 해주지만, 할 수만 있다면 곱돌이나 질그릇 약탕관에 그때그때 직접 달여서 먹는 게 가장 좋답니다.

그런데 한약이나 차를 달이지 않고 '다려서' 먹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무척 많은 사례가 나왔습니다. 다음은 그 중 일부입니다.

"이 약수는 명의 허준이 임금께 다려 올리는 탕재에 떠다 썼다고 기록돼 있다."

"의욕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감소할 때 감잎이나 매실을 다려 먹으면 효과가 있다."

"민간에서는 산후에 흔히 늙은 호박 속에 꿀을 넣고 다려 먹는다."

'달이다'와 '다리다'는 뜻이 많이다릅니다.

'물을 부어 우러나도록 끓이는 것'이 달이는 것입니다. '옷이나 천 따위의 주름을 펴기 위해 다리미 등으로 문지르는 것'은 다리는 것입니다. 교복이나 와이셔츠는 한번쯤 다려 보셨겠지요?

지금까지 한약을 다려서 드신 분들은 이제부터는 '다리지' 마시고 꼭 '달여서' 드시기 바랍니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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