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권이 바뀌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최근 유고슬라비아 방문 끝에 내어놓은 이른바 「신 베오그라드 선언」은 2차 대전이래 소련이 굳게 다져온 동구와의 일방적 결속관계에 질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이 선언은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전제아래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기들의 현실에 맞는 개발정책을 채택할 수 있으며 그 성공여부는 그 나라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통해 시험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48년「스탈린」이 유고를 코민포름(세계공산주의 운동)에서 축출할 때 그 주 이유가 되었던 「티토」의 독자노선을 이 선언은 명백히 용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선언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68년 소련군의 개입을 몰고 왔던 체코슬로바키아의 「두브체크」노선은 「고르바초프」 아래서는 용인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곧 「형제 사회주의 국가들」이 소련의 독선적 노선에서 이탈하려 할 때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련군을 투입시킬 수 있다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수정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확대 해석을 내리기는 아직 시기가 이른 것 같다. 무엇보다도 「고르바초프」는 이 선언을 보편화시키지 않고 유고에만 적용시키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이 선언의 진의가 어디 있든 간에 「고르바초프」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동구의 해방이 아니고 달라진 국제환경에 맞추어 소련의 제국 판도를 지키는데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소련은 56년 헝가리와 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군대를 투입, 반소 반란을 유혈 진압했고, 80년에는 폴란드에 고압적인 대표단을 파견, 자유노조운동의 싹을 갈랐었다.
그와 같은 무자비한 위성국들에 대한 무력개입은 「브레즈네프 독트린」으로 불리건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간에 소련이 제정 러시아 때부터 보여온 자체 안보상의 위협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고르바초프」가 모처럼 몰고 온 새바람도 그와 같은 전통적 불안감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유효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현명할 듯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르바초」의 대외적 해빙을 억제하는 제약은 동구 자체에서도 나오고 있다. 동구권 중에서도 「스탈린」식 통치체제가 지도층의 통치에 도움을 주고 있는 동독, 루마니아, 체코 등은「고르바초프」의 개혁에 관한 연설을 보도 관제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동구에서는 요즘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수호하기 위해 동독과 체코 연합군이 「고르바초프」의 소련으로 진격해야 되겠다는 농담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다른 동구 국가에서 한 말들을 종합해 볼 때도 보편적 새 독트린을 표방하고 있기보다는 새 현실에 적응하는 실용주의를 기본 틀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는 억압 정도가 높은 루마니아에서는 민주화를 역설하고 자유화 바람이 불고있는 헝가리에서는 보다 많은 「기강」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실용주의노선이 한반도, 특히 소련의 북한 관계에 있어서는 어떤 형태를 띨 것인지가 우리의 주관심사다. 다른 지역에서 그가 보인 현실감각이 우리 새 정부의 북방정책을 평가함에 있어서도 적용되기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