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끝났다"…독자 총선체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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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애초부터 서로가 야권통합에 뜻이 없으면서 총선거전 최후의 통합협상을 벌인 민주·평민·한겨레당(가칭)측은 19일 저녁 서교호텔의 폭력사태를 빌미로 삼아 통합협상을 사실상 끝장내 버렸다.
이번 협상이 민주·한겨레·무소속 서명파의 부분통합 합의로 궁지에 몰린 김대중씨가 평민당 총재직을 돌연 사퇴한 결과로 재개된 것이어서 처음부터 악관과 비관론이 교차돼 왔었다.
양측 통합추진파들, 더 정확히 말하면 주로 서울 출마 희망자들은 어떻게 하든 통합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양당내 주요세력들은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통합의 최대 장해 요인으로 부각된 최고대표위원 지명권 행사를 놓고 양측이 팽팽히 맞선 것은 양측간 불신의 깊이를 새삼 실증한 것이어서 통합된다 하더라도 일시적이고 편의적인 「위장통합」에 불과할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여기에 통합의 완충지대로 기능할게 기대됐던 한겨레 측마저 양측간의 대립을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괴청년들」의 정치폭력이 터지자 민주·평민 양측은 다같이 통합 논의는 사실상 끝났다는 판단하에 각자 총선거 체제로 전환하려는 방침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민주당 측은 19일 밤의 폭력사태가 평민당 강경파의 조직적이고 계획된 통합방해 책동으로 보고 그에 대한 해명 및 사과가 선행되지 않는 한 통합논의는 무의미하다며 통합협상 중단 결정을 내렸다.
다만 김영삼씨와 통합에 적극적인 일부 인사들이 통합성사를 위해 평민 측에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으나 그들마저 성사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김정길의원(민주)은 20일 새벽 통합협상을 통해 ▲3당이 인정하는 외부인사의 최고대표위원영입 ▲영·호남을 제외한 지역의 지분을 민주·평민·한겨레 측이 40대 40대 20으로 배분 ▲민주·평민대의원수의 50대 50을 위해 평민 측에 중앙상위대의원 대폭 할애 등 3가지 타협안을 새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평민당 측은 20일 오전·오후 2차례에 걸쳐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논의했으나 「수용불가」 의 잠정 결론 하에 『모든 문제는 회담장에서 논의하자』며 민주당 측에 「회담재개」를 촉구키로만 결정했다.
평민당은 오전 회의에선 『어떤 난관을 무릅쓰고라도 최대한 통합 쪽으로 몰고 가자』는 입장에서 『민주당 측이 회담장에서 공식 제안하면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의견이 우세.
그러나 오후 회의에선 당대표권을 자기들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온 민주당이 제3의 인물론을 내세운 것은 그 제안의 동기가 「통합불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짓고 일단 회담재개만을 촉구키로 결정.
이 때문에 영·호남을 제외한 40대 40대 20의 지분문제는 구체적 검토조차 하지 못했으나 두 김씨의 회동에서 합의된 반분의 통합정신에 근본적으로 위배된다는 점에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라는 쪽이 대세여서 사실상 수용불가 입장이나 마찬가지다.
평민당은 민주당이 김대중씨만 물러나면 통합할 것처럼 해놓고 김씨가 물러나자 이번에 대표권과 지분문제의 「새로운 제안」을 해오며 시간을 끈데다 서교호텔에서의 소란행위를 평민당 책임으로 몰아붙여 회담 불참의 「핑계」로 삼는 것은 결국 『통합은 안 하면서 김대중씨를 「잡는」 작전』이라고 몰아붙이고 독자총선 채비로 나선 인상이다.
따라서 평민당은 민주당에 대한 회담복귀 후에 대한 응답을 지켜본 뒤 확답이 없으면 통합 의지가 없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리고 22일께 공천심사위를 구성, 금주 말까지 공천작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야권통합협상은 19일 오후 회담장소인 마포 서교호텔의 시위·폭력사태로 회담 재개 하루만에 사실상 무산되는 불상사를 초래.
6인 전권대표들은 이날 오후 6시부터 서교호텔에서 통합신당의 「대표권」과「지분」문제에 대한 담판을 지을 예정이었으나 각 당 대표들이 회담 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날 낮 서소문 공원에서 「야권통합쟁취국민대회」를 마친 전대협소속 대학생 1백50여명이 몰려와 호텔 출입구와 로비를 점거, 『야권통합』 『협상타결』 을 외치며 시위 농성.
더욱이 평민당 지지자들로 보이는 괴청년 1백 여명까지 합세해 『사쿠라 민주당은 각성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회담장소를 위압적인 분위기로 돌변시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회담장에 도착한 최형우·김수한(민주), 허경만·신기하(평민)대표 등은 회담장도 구하지 못해 회담장을 홍은동의 스위스그랜드 호텔로 옮기기로 결정, 호텔을 빠져나가려 하자 학생들과 괴청년들이 물리적 폭력행사로 저지, 최형우 대표(民主)가 『협상하러 간다. 이러면 안 된다』고 호소했으나 괴청년 50여명이 달려들어 『죽여라』 『도망 못 가게 붙잡아라』고 고함치며 최대표와 김무성 민주당 재정국장에게 주먹세례와 발길질로 폭행을 가했고 심지어 담뱃불로 최대표의 손등을 지지는 등 10여 분간 행패.
또 일부는 호텔 측에 방을 내놓으라고 강박, 오후 6시15분 쫌 508호실을 얻어낸 후 협상 대표들을 반강제로 방안에 밀어 넣었다.
이들 괴청년들은 평민당의 허·신 대표에게는『굴욕협상 하지 말라』 『평민당 만세』를 외치며 박수까지쳐 대조적인 모습.
학생·괴청년들은 협상대표들이 들어있던 방 앞과 호텔 비상구 등 모든 출입문을 차단하고 있다가 밤10시가 넘어서야 「통행」을 해제.
그러나 괴청년 30여명은 협상대표들의 떠나는 모습을 취재하던 MBC의 이수향 기자와 조수원 카메라기자에게 폭행을 가해 조기자는 병원에 입원하는 등의 불상사를 야기. .
평민·한겨레측 대표들은 이날 밤 11시3O분쯤 스위스그랜드 호텔에 도착했고 민주당 대표들은 『이런 분위기에서는 협상자체가 이뤄질 수 없고 통합의 의미가 없다』며 김정길 의원을 대신 보내 난동사태의 「선 해명과 사과, 후 협상」 방침을 통고.
이에 대해 평민당 측은 『호텔에 모였던 사람들은 애국학생들과 정체불명의 세력들로 공작정치의 소행이므로 평민黨이 해명할 성질이 아니다』고 일축해 야권통합협상재개는 결국 「하루살이」로 종막을 내리게 된 셈이 되고 말았다. <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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