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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⑨김희진은 65점짜리 주장?

중앙일보

입력

김희진은 IBK기업은행을 받치고 있는 대들보같은 선수다. 용인=오종택 기자

김희진은 IBK기업은행을 받치고 있는 대들보같은 선수다. 용인=오종택 기자

"60점, 아니 65점이요."

IBK기업은행 주장 김희진(27)에게 2년차 주장으로서 자신의 점수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으레 물어보는 질문이지만 점수가 낮아 "왜"라고 물었다. 김희진은 "난 다른 선수를 이끌고 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주장이 되고 나서 조금 달라지고 있다. 5점 더 준 것도 그래서다"라고 말했다. 6일 GS칼텍스전 수훈선수로 함께 인터뷰장에 들어온 고예림도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희진의 말대로다. 김희진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주장감으로 보진 않았다. 소년 같은 커트머리의 보이시한 외모와 달리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6일 경기에서도 자신의 발을 밟고 다친 표승주 때문에 "미안해서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대표팀과 IBK기업은행에서 함께 손발을 맞춘 김사니 SBS해설위원은 "희진이가 보기와는 달리 '소녀소녀'하다. 다른 사람들을 다독이는 리더 유형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금은 도로공사로 이적한 박정아도 "처음에 희진 언니가 주장이 될 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 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김사니 위원은 "희진이가 주장이 되고 나서 나름대로 애를 썼다"고 말했다.

김희진과 김수지는 대표팀에서도 팀에서도 후배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희진과 김수지는 대표팀에서도 팀에서도 후배들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도 그런 김희진을 알기에 주장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다. 이 감독은 "지난해엔 사니와 (남)지연이가 있어서 선수단을 잘 이끌어줬다. 이번 시즌엔 경기 내에선 희진이가 주장 역할을 하지만 생활적인 측면은 (김)수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흥국생명에서 수지 메달로 후배들을 다독였던 김수지는 올해도 수지 메달로 팀원들의 기를 살려주고 있다. IBK 구단 관계자는 "김희진이 스스로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65점? 개인적으론 더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희진이 느끼는 책임감은 상당하다. 지난해까지 함께 뛰었던 입단 동기 박정아와 채선아(KGC인삼공사)가 차례로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2010년 10명이었던 기업은행 창단 멤버 중에 남은 사람도 김희진 하나 뿐이다.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이정철 감독도 "아무래도 희진이한텐 다른 선수보다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김희진은 "사실 IBK기업은행을 지킨다기보다는 나 역시도 새로운 팀에 왔다고 생각한다. 팀원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그는 "사실 예전엔 '내가 무조건 점수를 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이 친구들이 안됐을 때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놨다.

2011-12시즌 IBK 기업은행 선수단. 당시 멤버 중 남은 선수는 김희진 뿐이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2011-12시즌 IBK 기업은행 선수단. 당시 멤버 중 남은 선수는 김희진 뿐이다. [사진 한국배구연맹]

사실 지난해는 김희진에게 힘든 시기였다. FA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팀을 위해 아포짓과 미들블로커 포지션을 오갔다. 그만큼 출중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지만 선수 개인적으론 '희생'이 필요하다. 덕분에 IBK기업은행은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며 유니폼에 세 번째 별을 달았다. 대표팀에선 더 했다. 김연경(29·중국 상하이), 양효진(29·현대건설)과 함께 최근 몇 년간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뛴 선수가 김희진이다. 지난해 그랑프리 대회 중에는 팔꿈치 인대가 파열돼 진통제를 맞으면서 경기에 출전했다. 그럼에도 김희진은 "외국인선수들이 거의 아포짓을 맡기 때문에 내가 대표팀에서 뛰어야만 어린 선수들이 꿈을 키운다"고 말한다. 여자배구 최고연봉(3억원) 선수다운 실력과 마음가짐이다.

시즌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희진의 어깨는 더 무거워지고 있다. 선두 도로공사와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은행은 '슬로 스타터'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많아 비시즌 휴식기에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시즌엔 김사니(은퇴), 남지연(흥국생명), 박정아(도로공사), 김유리(GS칼텍스)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지고, 염혜선, 김수지, 김혜선, 고예림 등 새 얼굴이 늘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희진은 기복없는 경기력을 유지했다. 김희진은 "초반엔 잘 하자는 생각이 많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는 즐기는 마음으로 경기에 나선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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