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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3남매 엄마의 소주 9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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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4살·2살·15개월 된 어린 3남매를 화재로 숨지게 한 광주광역시의 22살 어린 엄마는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밤늦게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오는 모습이 아파트 폐쇄회로TV(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걸 보며 ‘한국의 숙취’(South Korea’s Hangover)가 떠올랐다. 한국의 음주문화를 다룬 중동 알자지라 방송의 25분짜리 프로그램이다. 젊은 여성이 술에 잔뜩 취해 화장실에 주저앉아 있다. 회식 땐 폭탄주가 이어진다. 밤거리엔 술 취한 사람이 즐비하다…. 우리에겐 익숙한 모습이다. 하지만 알자지라 특파원에겐 신기했나 보다. 그는 한국인에게 술은 도피처이고 음주량은 주당으로 유명한 러시아인의 두 배라고 했다.

22살 어린 엄마는 소주 9잔을 마셨다고 한다. 술에 취해 담뱃불을 이불에 비벼 끄고, 불이 나자 우왕좌왕했다. 방화·실화 여부는 더 따져봐야 한다는데, 그의 만취가 3남매의 죽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하다. 그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적어도 그의 만취에는 우리 사회도 책임이 있다. 현진건(1900~43)의 『술 권하는 사회』를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의 숙취’에서 보듯 술에 너무 관대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그가 마신 소주 9잔은 ‘고위험’을 넘어서는 ‘매우 위험’ 수준이다. 고위험은 만취·폭음으로 알코올 도수 17%짜리 소주를 기준으로 남성 8.8잔, 여성 5.9잔이다. ‘매우 위험’은 남성 14.9잔, 여성 9잔 이상이다. 술로 인한 폐해도 크다. 2016년 발생한 살인·강도 같은 7대 범죄의 25.6%는 술 취한 사람이 저질렀다.

새해부터 남산공원 같은 서울시 직영 공원 22곳이 ‘음주 청정 지역’이 된다. 여기서 음주 소란 행위를 하면 과태료를 물린다. 공공장소 음주 규제는 미국 등에선 이미 하는 건데 그보단 강도가 약하다. 음주 행위 자체를 처벌하진 않기 때문이다. 예전 미국에 연수 갔을 때 대학 오리엔테이션에 ‘술 조심’이 있었다. 술 취해 돌아다니거나 술병을 보이게 들고 다니면 처벌받으니 조심하란 거다. 연수생들과 함께 공원에 놀러 가 고기 구워 먹으며 술을 마시다 제복 입은 순찰자가 보이자 얼른 숨겼던 기억도 난다.

지자체의 음주 청정 지역 지정에 반발도 있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에 관한 침해이고, 음주로 인한 문제 행위는 이미 처벌하고 있는데 과도하다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음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제주도의회가 지난해 12월 통과시킨 음주 청정 지역 조례(건전한 음주문화 환경 조성에 관한 조례)의 2조 2항은 ‘절주’ 규정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정신적·신체적·사회적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적정하게 음주하는 것’이다. 나부터 새해 다짐으로 해야겠다.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