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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일본은 왜 ‘고양이 천국’이 되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일본인 사로잡은 고양이, 그리고 '네코노믹스'

일본에서 반려묘가 반려견의 수를 앞질렀다. [사진 크라운 캣 홈페이지]

일본에서 반려묘가 반려견의 수를 앞질렀다. [사진 크라운 캣 홈페이지]

『오늘의 네코무라씨』 라는 일본 만화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버려진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줬던 도련님을 만나기 위해 가정부가 된 고양이 네코무라씨가 주인공이죠. 『고양이와 할아버지』라는 만화도 인기입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고양이 타마와 사는 다이키치 할아버지. 남은 날이 얼마 없는 노인과 늙은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일상을 그립니다.

그 외에도 일본 만화 중엔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무수히 많습니다. 만화 뿐일까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등의 영화와 ‘고양이의 보은’ ‘루돌프와 많이 있어’ 등의 애니메이션이 떠오릅니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들

일본에서 만들어져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고양이 캐릭터 헬로 키티도 있네요. (여기서 잠깐, 헬로키티의 제작사인 ‘산리오’는 몇년 전 헬로키티가 고양이가 아닌 영국에 살고 있는 소녀라고 발표해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죠. 볼 옆의 털 세 가닥은 소녀의 귀밑 털이랍니다!) SNS에서 활약하는 ‘고양이 스타’도 많습니다. 일본인들은 왜 이렇게 고양이를 좋아하는 걸까요. [고 보면 모 있는 기한 계뉴스]에서 알아봅니다.

일본의 반려묘 수 반려견 앞질러  

인스타그램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고양이 마로. 주인은 요리사다. [@rinne172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고양이 마로. 주인은 요리사다. [@rinne172 인스타그램]

일본인들의 대단한 고양이 사랑을 보여주는 뉴스가 최근 또 전해졌습니다. 일본 페트푸드협회가 지난 해 말 20~79세 5만 명을 대상으로 개·고양이 사육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일본 전국에서 사육하는 고양이는 약 953만 마리, 개는 약 892만 마리로 반려묘의 수가 반려견의 수를 앞지른 겁니다. 이 조사를 시작한 1994년 이후 줄곧 반려견의 수가 많았는데 처음으로 뒤집한 결과가 나온 것이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고양이는 반려동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직은 세계적으로 반려견(48%)의 수가 반려묘(38%)를 앞섭니다.

일본에는 ‘고양이 섬’도 있습니다. 후쿠오카 북쪽에 있는 아이노시마(相島)입니다. 이 곳의 인구는 470여 명인데 사람 수의 5분의 1이 넘는 100마리의 고양이들이 섬 곳곳을 누비며 살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을 태운 배가 도착하면 고양이들이 떼로 몰려 나와 맞이하는 장면으로 유명하죠. 아이노시마는 지난해 8월 애묘인으로 유명한 가수 에드 시런에게 섬을 찾아 달라고 요청하는 초대 영상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복을 부르는 고양이 ‘마네키 네코’

일본인들의 고양이 사랑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11세기 초 헤이안 시대에 쓰여진 고전 소설 『겐지이야기(源氏物語)』에도 귀족들이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키웠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에도 시대(1603~1867)에 인기였던 그림 우키요에(浮世絵) 중엔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그림이 많죠.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는 가게 입구나 기념품 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마네키 네코(招き猫)’입니다. 치켜든 손(발?)으로 행운과 복, 손님을 부른다고 합니다. 왼손을 든 고양이는 손님을 부르는 것이고 오른손은 돈을 부르는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양 손을 다 들고 있는 고양이도 있습니다.

행운을 부르는 고양이 '마네키 네코' [중앙포토]

행운을 부르는 고양이 '마네키 네코' [중앙포토]

‘마네키 네코’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는 데, 그중 가장 지지를 받는 것이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절 고토쿠지(豪徳寺)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지역의 영주 한 명이 독수리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 절의 문 앞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을 보고 손짓했다고 합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절 안으로 따라 들어가는 순간, 천둥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 덕분에 낙뢰의 화를 피했다며 손을 흔드는 고양이를 이 절의 수호신으로 삼았다는 것이죠.

또 하나는 도쿄 다이코구의 이마도(今戸) 신사에 전해 내려옵니다. 근처에 살던 한 노파가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키우던 고양이를 버려야 했습니다. 그날 밤 노파의 꿈 속에 고양이가 작별 인사를 하러 나타납니다. 잠에서 깬 노파는 고양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인형을 만들었고, 이를 신사에 참배 오는 손님들에게 판매하면서 유명해졌다는 설입니다.
<『키워드로 여는 일본의 향』(제이앤씨), 『일본 일본인 일본 문화』(다락원) 참조>

1인 가구 급증, 고령화도 반려묘 인기의 원인  

일본에서는 1990년대 반려견이 유행이었습니다. 시추, 말티즈, 토이 푸들 같은 작은 개가 특히 사랑을 받았죠.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며 반려 동물로 개보다는 고양이를 선택하는 사람이 급속하게 늘어납니다. 이유가 뭘까요.

일본페트용품공업회 관계자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르기 쉬운 것”을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영역을 중시하는 습성 탓에 매일 데리고 나가 산보를 시킬 필요가 없고, 짖지 않아 이웃에 폐가 될 염려도 적습니다. 개에 비해 몸집이 작기 때문에 노인들도 돌보기가 쉽습니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노년층 인구가 증가하면서 고양이가 상대적으로 함께 하기 편한 동물로 여겨진다는 겁니다. 단독 주택이 많던 과거엔 집을 지킬 목적으로 개를 키우는 사람도 많았지만, 아파트 등의 공동 주택이 늘어나며 개보다는 고양이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미뉴에트 고양이. [사진 야후재팬]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미뉴에트 고양이. [사진 야후재팬]

인상평이긴 하지만 고양이가 일본인의 성격과 잘 맞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산케이 신문은 일본인들의 지극한 고양이 사랑에 대해 자립을 중요시하는 일본인들은 충성스러운 개 보다는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고양이에게 더 끌린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울러 고양이의 우아하고 단아한 표정이나 몸짓 등이 일본인의 미적 감각과 맞아 떨어진다는 설명입니다.

고양이 팩 서비스, 고양이 부동산도 등장

유별난 사랑을 뽐내는 만큼, 고양이를 위한 다종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합니다. 고양이 카페는 이제 도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고양이와 함께 하는 요가 프로그램도 애묘인 사이에 인기입니다. 요가에 ‘고양이 자세’라는 게 있죠. 고양이를 본따 자세가 생겼을 만큼 고양이는 관절이 유연해 많은 동작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최근에는 고양이의 미용과 건강을 위해 팩과 뜸 등을 서비스해주는 업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허브 등을 배합한 용액에 담가 두었던 따뜻한 천으로 고양이의 몸을 감싸는 ‘고양이 팩’은 보습 효과 뿐 아니라 정전기를 방지해 털 엉킴과 털 날림을 막아 준다고 합니다. 1회에 1000엔(약 9400원)에서 3000엔(약 2만 8000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반려묘와 함께 사는 집 [크라운 캣 홈페이지]

반려묘와 함께 사는 집 [크라운 캣 홈페이지]

대도시에는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있는 주택이나 사무실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네코부동산(猫不動産)’이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도쿄 시부야에 사무실을 연 ’크라운 캣(Crown Cat)‘은 2016년부터 고양이를 기를 수 있는 집을 소개하고, 반려묘와 같이 살 수 있도록 집을 개조해주는 주택 리모델링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네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는 이가와 다쓰야 도쿄 네코부동산 사장은 리모델링의 원칙으로 1)고양이의 건강 관리 2)생활의 쾌적함 3)이웃에 대한 배려 등을 들었습니다. 모델 하우스를 보면,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습성을 배려해 집 안의 천장 부분에 고양이의 휴식·운동 공간을 만들어준 것이 특징입니다.

‘네코노믹스’로 인한 경제효과 연간 약 22조원

일본 와카야마현 기시역의 1대 &#39;고양이 역장&#39; 타마. 2015년 세상을 떠나 지금은 2대 역장 니타마가 역을 지키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일본 와카야마현 기시역의 1대 &#39;고양이 역장&#39; 타마. 2015년 세상을 떠나 지금은 2대 역장 니타마가 역을 지키고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이렇게 반려묘 문화가 만들어내는 경제 효과를 일컬어 ‘네코노믹스’라고 부릅니다. 고양이를 뜻하는 일본어 ‘네코’와 ‘이코노믹스’를 합친 신조어로,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베노믹스’를 본따 만들어졌죠. 이 말을 만들어낸 미야모토 가쓰히로(宮本勝浩) 간사이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2015년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네코노믹스로 인한 경제 효과가 연간 2조 3162억엔(약 22조 원)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고양이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 등의 직접 효과와, 고양이 캐릭터나 고양이 역장 임명 등으로 유발되는 관광 증대 등의 간접 효과를 모두 합친 금액입니다.

한국에는 아직 반려동물을 따로 집계한 수치가 없다고 합니다. 반려동물을 포함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집계한 전국 개와 고양이 사육 추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개가 513만마리(73%), 고양이가 189만마리(27%)로 추정됩니다. 몇년 전 통계긴 하지만 아직 한국에는 반려견의 수가 반려묘보다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주위만 둘러봐도 최근 몇 년 사이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삼는 사람들이 급속히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고양이의 인기가 강아지를 넘어설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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