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보조금 지원사업…공무원은 압력, 단체는 보조금 꿀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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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9월 4~6일 경기도 평택에선 '뮤직런 평택' 행사가 열렸다. 메르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평택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경기도 등이 4억2900만원을 투입해 준비한 음악 행사였다. 당시 국내 86개 인디밴드를 초청해 평택역 앞 등 평택지역 16곳에서 100차례 걸친 버스킹(거리) 공연을 벌였다.
하지만 행사 내용은 부실했다. 100차례 걸친 공연의 총관람객 수도 고작 1만5000여명에 그쳤다. 이유가 있었다. 검찰 조사 결과 이 행사를 담당한 민간 사단법인 A센터가 행사 비용을 부풀려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마크 [중앙포토]

검찰마크 [중앙포토]

경기도 등에서 지원받은 보조금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사용한 경기지역 사단법인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을 감시해야 할 남경필 경기지사의 비서실장 등 공무원과 도의원들은 오히려 관련 사업 예산이 줄어들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수원지검 특수부(박길배 부장검사)는 4일 경기도 예산 관련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사기 등 혐의로 A센터 사무국장 B씨(42) 등 2명을 구속기소 하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경기도지사 비서실장 C씨(44)를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또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이하 경경련) 전 사무총장 D씨(53·여)와 경경련 전 기업지원본부장 E씨(53) 등 3명을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 하고 도의원 F씨(54) 등 6명도 불구속기소 했다.

수원지검, 경기도 예산 관련 비리 수사 결과 발표 #횡령 등 혐의로 5명 구속 기소, 7명 불구속 기소 #경기도의원, 도 비서실장, 보조금 지원 단체 간부 등 포함 #보조금 빼돌려 거액의 비자금 조성, 일부는 뇌물로 #검 "공무원과 특정 단체 유착한 예산 낭비 사례 엄단"

A센터 사무국장 B씨는 2015년 경기문화재단에 '뮤직런 평택' 행사 지원금 신청을 하면서 시설비 등을 부풀려 4억29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경기문화재단 등에서 받은 예산 중 1억1500만원 정도를 빼돌려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뮤직런 평택 사건 범행 개요도 [사진 수원지검]

뮤직런 평택 사건 범행 개요도 [사진 수원지검]

행사는 처음부터 졸속으로 진행됐다. 경기문화재단은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공모를 거치지 않고 A센터에 행사를 맡겼다. 경기도는 당초 이 행사 예산으로 4억8000만원의 예산안을 세워 경기도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도의회는 "행사 규모 등을 볼 때 예산이 과하다"며 2억4000만원을 삭감했다. 이 과정에서 C비서실장은 경기도 예산담당 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도의회에서 삭감된 예산만큼 특별조정교부금으로 편성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결국 이 행사 예산으로는 총 4억8000만원이 투입됐고 평택시와 경기문화재단을 거쳐 A센터에 2억2900만원이 지급됐다.

이 과정에서 경경련의 비리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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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경련 전 사무총장 D씨와 전 본부장 E씨 등은 2013년 6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경기도에서 받은 보조금 170억원 중 5억 200만원과 8억4900만원을 강사비 등으로 돌려받아 비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 돈을 경기도의원 F씨 등에게 "사업을 도와달라"며 건네기도 했다.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범행 개요도 [사진 수원지검]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범행 개요도 [사진 수원지검]

이 과정에서 C비서실장은 2015년 9월 한 언론사를 통해 경기도의 도정홍보물을 발간·배포할 당시 이에 대한 경기도의 홍보예산이 책정되지 않자 경경련에 지역 일자리 창출과 관련한 보조금을 8000만원가량 부풀려 지급한 뒤 이 가운데 5500만원을 홍보물 발간·배포비용으로 쓰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경경련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감사원의 의뢰로 수사에 착수해 D씨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C비서실장의 연루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뮤직런 평택' 건까지 확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그는 경경련에 보조금을 과다 지급한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직권남용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경기도 공무원과 특정 단체가 유착되어 경기도 예산을 낭비해 온 구조적 비리를 적발해 엄단했다"며 "예산과 관련된 범죄의 피해자는 국민인 만큼 공적자금 비리 사범에 대한 검찰의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등 지방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남 지사 측은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입장이다. 남 지사 측 관계자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외부로 흘러나왔다. 이는 명백한 피의사실 공표"라며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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