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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시장·가판 … 베이징선 지갑 열 일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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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 11월 선양시에서 QR코드가 찍힌 옷을 입은 강아지가 동냥하고 있다. [사진 이매진차이나]

지난해 11월 선양시에서 QR코드가 찍힌 옷을 입은 강아지가 동냥하고 있다. [사진 이매진차이나]

서민 식당의 모바일 결제로 문재인 대통령을 감탄케 한 베이징은 정말 현금 없이 살 수 있는 ‘무현금 사회’였다.

“다 돼?” 문 대통령 감탄한 모바일 결제 체험기

지난해 12월 30일 하루는 공유 자전거로 시작했다.

집 앞에 세워진 노란색 오포(ofo) 공유 자전거의 QR(Quick Response)코드를 스캔하니 철컥 자물쇠가 풀렸다. 오포를 1.5㎞ 정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해 다시 자물쇠를 잠갔다. 순간 오포 앱에 적립된 잔액에서 1위안(164원)이 자동으로 빠져나갔다.

다음은 공유 자동차. 2015년 베이징에서 창업한 공유 전기자동차 업체 이두융처(一度用車) 앱을 켜 빌릴 차량을 선택했다. 차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현대차 합작사인 베이징차가 만든 전기차 EV160 콘솔 박스에 놓여 있는 키를 꽂고 목적지로 향했다.

베이징 코리안타운 왕징의 야채가게에도 QR코드가 붙어 있다. [사진=선르주 JTBC 촬영기자]

베이징 코리안타운 왕징의 야채가게에도 QR코드가 붙어 있다. [사진=선르주 JTBC 촬영기자]

문 대통령이 찾았던 대만계 서민 식당 체인 융허셴장(永和鮮漿) 인근 지정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요금은 알리바바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 즈푸바오(支付寶)를 이용했다. 즈푸바오 계정에 보관해 둔 잔액에서 이동 거리와 사용 시간을 병산한 요금 41.2위안(6757원)이 빠져나갔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신문 가판대가 보였다. 시사 주간지 남방주말 신년호가 눈에 띄어 골라 들었다. 가판대 위 A4 용지에 인쇄된 텅쉰(騰訊·텐센트)의 모바일 지불 서비스 웨이신즈푸(微信支付) QR코드를 스캔한 뒤 5위안(820원)을 결제했다.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규모

중국 모바일 결제 시장규모

융허셴장 식당에 들어서니 벽걸이 TV에서 문 대통령 방문 영상이 반복해서 상영되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왼쪽에 모바일 결제를 위해 즈푸바오, 오른쪽에 웨이신즈푸 QR코드가 붙어 있었다.

종업원에게 문 대통령 메뉴를 확인해 똑같이 시켰다. 명세표에 적힌 액수는 45.5위안(7462원). 즈푸바오로 QR코드를 스캔한 뒤 액수를 찍고 결제했다.

점심 약속 장소인 왕징(望京)까지는 중국판 우버인 디디다처(滴滴打車)를 이용했다. 앱에서 목적지를 입력하고 차를 부르자 3분 만에 도착한 좐처(專車·고급 콜택시)는 30여 분 뒤 식당에 도착했다. 요금 83.86위안(1만3753원)은 연동시켜 놓은 웨이신즈푸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갔다.

식사 후 코리아타운의 재래시장 왕징제다오(望京街道) 종합 야채 시장을 찾았다. 학교 운동장 넓이의 시장 곳곳엔 현금을 꺼내는 손님보다 매대 기둥을 도배한 QR코드를 스캔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한 야채 가게에서 말린 고추와 더덕 33위안(5412원)어치를 역시 즈푸바오로 계산했다.

귀갓길엔 지하철을 탔다. 왕징역에서 스마트폰으로 이퉁싱(易通行) 앱을 내려받아 결제 후 탑승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집 근처 역까지 요금은 4위안(656원). 앱에 생성된 QR코드를 개찰구에 갖다 대니 자동으로 차단문이 열렸다.

하루 동안 총 299.96위안(4만9196원)을 썼지만 지갑은 한 번도 열 필요가 없었다.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은 폭발적 성장세다.

2016년 35조 위안(약 5795조원)이었던 중국의 모바일 결제 총액은 2019년 약 296조 위안(4경8547조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이 지난봄 “항저우(杭州)에서 강도가 편의점 3곳을 털었지만 1800위안(약 30만원)밖에 못 건졌다”고 할 정도로 현금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국은 이제 중국을 뒤쫓는 처지다.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 플래텀의 조상래 대표는 “중국은 신용카드 시장이 높은 문턱으로 초기에 성장을 멈춘 뒤 바로 모바일 결제로 직행한 경우”라며 “한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일지 모르지만 모바일에서 후진적인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선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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