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쌍의 부부 꿈같은 한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여보….』
『여보….』
서로 마주 본채 말문이 막혀 섰던 남녀는 잠시후 주위의 시선도 잊은듯 달려들어 얼싸안았다.
눈가에 잔주름이 잡힌 아낙들의 볼엔 오랫동안 사무친 정한이 눈물로 얼룩졌고, 이마와 손등에 고생스런 이민생활의 자취가 역역한 남편들은 감회의 손길로 아내의 등을 어루만졌다.
지난달13일낮12시(현지시간)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국제공항입국장-.남편이 미국에 건너가 불법체류해 짧게는 3년, 길게는 14년동안이나 태평양을 사이에두고 생이별을 해 살던 17쌍의 부부가 뉴욕한인회복지재단(위원장 하종덕·49)과 중앙일보뉴욕지사가 공동추진한「재미불법체류자가족상봉사업」으로 마침내 감격의 재회를 했다.
미국측의 인도적 배려로 한달간 미국서 남편과 지내기위해 태평양을 건너간17인의「신부아닌 신부」들은 공항에서 남편들의 영접을 받은뒤 남편을 위해 갖고 간 자녀들의 사진첩·한복 바지 저고리·떡·약식등「모국」을 담은 짐보따리를 들고 각각 남편의 숙소로 가 오랫동안 맺혔던 회포를 풀었다.
14년 망부석의 한을 푼 전창직씨(52)의 부인 서정숙씨(49)는『한때 다시는 못만날 것같아 원망스런 마음에 이혼까지 생각했었다』며 남편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말을 잇지 못했다.
8년만에 남편을 만난 차석순씨(37)도『남편이 미국에 온뒤 위암수술을 받고 병원비가 없어 실밥도 빼지 않은채 밤중에 도망나왔다는 말을 편지로 전해듣고 밤새 눈물을 흘렸다』 며『어디서 살든 가난하더라도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미국에 있는 재미교포는 줄잡아 1백만명. 이중15%인 15만명정도가 불법체류자라는 것이 미행정부이민국(INS)의 추산. 그러나 뉴욕한인회에서는 그보다 많은 30%정도가 불법체류자로 보고있다.
아무런 법적 보호를 못받는 이들은 대부분 일정한직업을 갖지 못한채 뜨내기농장노동자나 야채상종업원을 하며 하루하루를 불안속에 숨어지내는 실정.
중앙일보 뉴욕지사는 이같은 불법체류교포들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미국내소수민족 신문으로는 처음으로 작년5월부터 뉴욕한인복지재단과 공동으로 이들의 사면사업에 착수, 그동안 5차에 걸쳐 6백29명을 사면시켜 노동허가증을 받게 해주고 현재 2천여명으로부터 추가신청을 받아 사면사업을 계속하고있다.
중앙일보와 복지재단은 또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재미실업인 유영수씨(52)의 지원아래 이번의「상봉사업」을 주선한 것인데 이사업에는 주하미대사관 총영사「앤티·퍼스」씨가 나서서 비자발급등 어려운 문제를 풀어줘 결실을 맺었다.
유씨와 변종덕복지재단위원장은『이번 가족상봉이 성공함에 따라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사업을 계속, 6월까지 모두 1백명의 가족상봉을 돕겠다』고 밝혔다. <뉴욕=길진현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