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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주말 골프 인사이드] 김형욱 압력으로 생긴 KPGA, 투어 분리 안 해 50년 제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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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남자 골프 1968년 그리고 2018년

PGA는 일반 프로, PGA투어는 선수 이익단체다. PGA 주최 PGA챔피언십(왼쪽) 등 메이저대회를 제외하곤 PGA투어가 대회를 주관한다.

PGA는 일반 프로, PGA투어는 선수 이익단체다. PGA 주최 PGA챔피언십(왼쪽) 등 메이저대회를 제외하곤 PGA투어가 대회를 주관한다.

1968년 봄 일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제3공화국의 실력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정·재계 주요 인사들을 불러모았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중국음식점 아서원에서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잔뜩 긴장한 참가자들은 방명록에 사인하고 100만원씩을 내야 했다. 김형욱의 비서실장은 “프로골프협회를 만들기 위한 기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프로골퍼 한장상씨가 중앙일보에 연재한 글을 묶은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에 나오는 얘기다. 그해 5월 17일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발족하게 됐다.

미국은 투어 선수들 1968년 독립 #PGA는 골프장 관리, 교육 전담 #KPGA 준·정회원, Q스쿨 거쳐 선수 #젊은 스타 탄생 힘들어 흥행 뒷걸음 #일반 레슨 프로도 생계 어려움 호소

PGA

PGA

그해 미국 골프계에도 큰 변혁이 생긴다. 골프 선수들이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of America)에서 독립한 일이다.

발단은 TV 중계권이다. 아널드 파머 등 인기 스타의 출현으로 이전에 없었던 중계권료가 발생했는데 이 돈을 놓고 갈등이 생겼다. 선수들은 상금으로 써야 한다고 했고, 일반 프로들은 골프 저변을 늘리는데, 그러니까 자신들이 써야 한다고 했다.

PGA는 숫자가 많은 일반 프로들이 집행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이에 반발해 뛰쳐나와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이 단체가 PGA 투어가 된다. 이후 유럽도, 일본도 투어 프로와 일반 프로 조직이 분리됐다. 양쪽의 가는 길이 다르고 이해관계도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남자(KPGA)와 여자(KLPGA) 모두 투어 프로와 일반 프로가 한 울타리에서 살고 있다. 중계권료가 급등한 KLPGA는 68년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돈을 어디에 쓸지를 놓고 갈등 조짐이 보인다. 그러나 회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투어 인기가 높아 아직은 수면 아래다.

KPGA는 위기다. 투어와 일반 프로 양쪽 모두 어렵다. 투어는 작은데 선수가 되려면 비용이 너무 비싸 수지가 안 맞는다. 선수가 되는 과정도 복잡하다. 준회원이 되고 그 다음 정회원을 딴 후 투어 출전권 시험(Q스쿨)을 통과해야 한다.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투어와 일반협회가 분리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팬들을 매혹시킬 젊은 스타,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힘든 구조다. 선수를 지망했다가 경쟁에서 탈락하면 대안이 마땅치 않다. 선수가 되려는 남자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PGA투어의 가장 큰 대회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중앙포토]

PGA투어의 가장 큰 대회인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중앙포토]

일반 프로들은 주로 레슨을 한다. KPGA 회원 자격증을 찾는 사람들은 감소하고 있다. KPGA 프로들은 어렵게 프로 자격증을 땄는데 요즘 생계도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한국에서는 초창기 프로는 투어프로였다. 그래서 공 잘 치는 순서로 신분이 생겼다.KPGA가 몸집을 키우다 보니 계급도 복잡해졌다. 투어에 나가는 선수, 일반프로(정회원), 세미프로(준회원)로 구분된다. 1부 대회에 나가는 투어 선수는 100여명인데 전체 회원은 6300여 명이다. 협회는 준회원을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도 아닌 이상한 신분으로 만들었다.

PGA tour

PGA tour

준회원은 2015년까지는 1부 투어 대회에 못 나갔다. 아마추어도 참가할 수 있는 월요 예선 대회를 ‘준’회원이라서 나갈 수 없었다. 협회는 이후 준회원을 프로, 정회원을 투어프로라고 이름을 바꿨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정회원(바뀐 이름으로 투어프로) 중 대다수는 투어프로가 아니라 일반 프로다. 진짜 투어프로는 뭐라고 부를 건가. 게다가 준회원에겐 투표권도 주지 않는다.

협회는 나름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다른 두 조직을 꾸려가려니 쉽지 않을 것이다.

KPGA

KPGA

갈라서야 한다. 투어 프로와 분리된다고 해서 일반 회원들이 불리한 것은 아니다. KPGA가 교육기관으로 거듭나면 된다. 미국 PGA가 그렇다. 회원들에게 레슨 방법은 물론 골프장 운영, 관리 등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이론에 정통한 선생님들이 배출된다. 이들은 투어에서 뛸 뛰어난 선수를 길러낸다. 프로골프협회는 공 치는 능력만이 아니라 가르치는 재능, 혹은 잔디를 관리하는 기술 등 다양한 기준으로 자격을 나눠야 한다. 그래야 투어프로, 정회원, 준회원으로 차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틀 후면 2018년이다. 한국프로골프협회를 만든 지 50년이 된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3공화국 시절 만들어 준 낡은 프로골프 체제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S BOX] 숲 들어가면 알까기, 디벗 빠지면 발로 차기 … 골프 ‘반칙왕’ 김형욱

김형욱

김형욱

김형욱(사진) 중앙정보부장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중앙정보부 안에 인도어 연습장을 만들어 6개월간 연습한 후에야 골프장에 나갔다. 감나무 헤드 시절 230야드 이상을 치는 장타자이자 싱글 핸디캡이었다고 한장상 프로는 기억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회고록에서 “김형욱은 내기를 하다 질 것 같으면 판돈을 배로 올리는 ‘따블’ ‘따따블’을 부르곤 했다. 하지만 계속 지게 되면 비서를 시켜 ‘지금 각하가 부장님을 급히 찾습니다’라는 엉터리 보고를 하게 했다. 그 핑계로 돈을 주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그 때문에 ‘김형욱에게 돈 안 잃은 사람 없고, 김형욱에게 돈 따본 사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술회했다.

한장상 프로는 김형욱이 공이 숲으로 들어가거나 디벗에 빠지면 가방으로 가리고 공을 슬쩍 떨어뜨리거나 발로 차 좋은 자리로 옮겼다고 썼다.

6년간 중정 부장을 했던 김형욱은 박정희 대통령과 불화가 생겨 1973년 망명했고, 79년 프랑스에서 납치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장상 프로는 “역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골프 발전엔 큰 도움을 줬다”고 했다. 김 부장은 프로골프협회를 만들었으며, 망명 직전 대한골프협회장도 지냈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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