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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시진핑의 남자가 낙마한 진짜 이유... 당대회 보면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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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연구원과 성균중국연구소는 지난 19일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대내외 환경변화와 새로운 한중관계 모색’ 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그간 19차 당대회에 대한 기사들은 쏟아졌지만 각 분야별로 어떤 함의가 있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날 전성흥 서강대 교수는 "내년 2월, 한국 학자들이 19차 당대회에 대한 총합적인 분석을 담은 책을 낼 예정이다"고 소개했다. 이날 세미나 중에서 정치와 군사 분야에 관한 학자들의 통찰을 소개한다.

-시진핑 권력집중은 현상적일 뿐, 권력집중화 시스템 작동한다 #- 리커창이 시진핑에게 보고한다? 틀린 말

한국의 신정부 출범과 중국의 19차 당대회 이후 변화된 환경을 점검한 세미나. 1세션은 ‘중국의 대외관계와 주변국 관계 평가’, 제2세션은 ‘한중 정치외교관계의 변화’, 제3세션은 ‘남북 및 북중관계의 재정립’, 제4세션은 ‘새로운 한중 경제사회관계의 모색’으로 진행됐다. [출처: 차이나랩]

한국의 신정부 출범과 중국의 19차 당대회 이후 변화된 환경을 점검한 세미나. 1세션은 ‘중국의 대외관계와 주변국 관계 평가’, 제2세션은 ‘한중 정치외교관계의 변화’, 제3세션은 ‘남북 및 북중관계의 재정립’, 제4세션은 ‘새로운 한중 경제사회관계의 모색’으로 진행됐다. [출처: 차이나랩]

조영남 서울대 교수(정치분야)=19차 당대회의 핵심은 결국 2022년 20차 당 대회에서 누가 시진핑의 뒤를 이을 것인지였다.

이번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이 얼마나 권력을 강화할지가 관건이었다. 보통 짝수 당대회에서는 권력 교체가 이뤄지고 홀수 당대회는 지도자의 권력 강화가 되는지가 초점이었다. 사실 2014년부터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 심화가 논의가 되어 왔다. 2015년에 데이비드 샴보라는 학자가 "시진핑 체제가 위험하다"라는 논의가 한국에선 증폭됐다. 그러다 보니 19차 당대회 전부터 '시황제 등극', '절대권력'이란 이야기도 나왔다.

가운데 조영남 서울대 교수 [출처: 차이나랩]

가운데 조영남 서울대 교수 [출처: 차이나랩]

그러나 저는 이번 당 대회가 특출난 것은 아니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진핑 절대권력'이나 '1인 체제'라는 표현은 지나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도가 된 이유는 2014년을 전후로 해서 외국 기자들이 중국에 대한 반감을 상당히 높여서라고 생각한다. 유독 한국 언론이 19차 당대회 이후 획일화된 보도를 내놓고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시진핑 1인 체제라고 쓰고 있다. 저는 "그렇게 단순하지않다"고 몇 년째 이야기하고 있다. 분석할 때 단순히 인민일보의 사진에서 크게 나왔다고 그것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 집단지도체제냐 1인 체제냐의 기준을 저는 인선 규범에서 찾는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게 68세 연령 규범이다. 이것이 없으면 권력 종신제가 된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거나 상관없이 오래 하면 권력은 집중되기 마련이다. 이걸 막은 게 연령 규범이다. 제가 보기엔 10년을 주기로 해서 지도자가 이렇게 전격적으로 교체되는 케이스는 중국 외에는 잘 없다.

이걸로 볼 때 중국은 권력 집중화를 막고 있다. 단, 전과 다른 차이점은 두 가지다. 첫째, 총서기 사전 결정 제도가 바뀌었다. 그래서 시진핑의 후계자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보면 안 되고 결정 방식이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 과거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중국 지도부에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복수의 후보자를 놓고 경쟁 붙이는 체제로 바뀐 것이다. 이런 건 시진핑 개인이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쑨정차이 [출처: 이매진 차이나]

쑨정차이 [출처: 이매진 차이나]

그만큼 시진핑 후계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둘째, 추천인 제도도 폐지되었다. 과거에는 예비후보를 약 200명 정도로 장차관급 (3000명) 리스트 안에서 걸러서 그 200명을 대상으로 투표를 했는데 지금은 347명에게 물어본 것이다. 시진핑과 정치국 상무위원 일부가 347명의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지도자 후보추천을 받은 것이다. 이게 두 가지 큰 변화다.

저에게 있어 19차 당대회의 가장 큰 소득은 보시라이, 저우융캉, 쑨정차이가 왜 정치적 야심가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이들이 왜 낙마했는지를 확인했다는 점이다. 쿠데타를 음모했다는 건 확률이 낮은 얘기다.

지난 7월 쑨정차이가 낙마했는데 그 배경을 살펴보면...쑨정차이가 과거의 추천인 제도를 이용해서 소위 '매표활동'을 하고 중앙위원들에게 작업을 걸고 결탁했을 공산이 크다. 그러다 보니 이번 당대회 때 추천인 제도도 폐지하고 쑨정차이 등도 낙마시킨 것이다.

리커창이 시진핑에게 보고해야?

잘못된 분석... 오히려 시진핑 자신의 책임성도 강화한 것

19차 당대회에는 시진핑 개인의 영도라기보다 공산당 전체의 영도를 강조하는 비장함이 드러났다.

일부에서는 “총리인 리커창조차 시진핑에게 따로 보고해야한다”고 잘못 해석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리커창이 시진핑에게 개인적으로 보고하는 게 아니다. 시진핑도 당연히 정치국원이기 때문에 시진핑을 '포함한' 정치국원들이 다 보고하는 것이다. 시진핑에게 일일이 비준을 받는 게 아니다. 즉, 시진핑 시대 들어와서는 정치국원 개인들마다 보고를 하게 함으로써 집단지도체제의 책임성을 강화한 것으로 봐야 한다.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 공산당 영도 강화는 당내 규율 강화, 반부패 등으로 표출됐다.

시진핑 시대에 숙청된 보시라이 사건의 핵심도 “보시라이 너는 정치국에 만족하라”고 정치국에서 결정했는데 보시라이가 정치국 상무위원을 되겠다고 작업하다가...즉, 당 중앙의 안배를 무시하려다가 숙청된 것이다. 시진핑 정부 들어서 부패 청산을 하면서 장차관급 3000명 중에서 440명이 날아갔다. 형사처분 받은 이가 260명이다. 과거 문화대혁명과 같은 비상 시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즉, 지난 5년 동안 공산당 내부적으로는 전시(戰時)에 가까운 일을 벌인 것이다.

김태호 한림대 교수(군사 분야)

오른쪽 김태호 한림대 교수 [출처: 차이나랩]

오른쪽 김태호 한림대 교수 [출처: 차이나랩]

1985년~2015년까지 중국은 30년간 군 현대화를 하려고 했으며 '유례가 없는' 군 개혁을 실시해왔다. 이 와중에 19차 당대회가 개최된 것이다. 19차 당대회를 군사적 렌즈를 끼고 보면 3가지 특징이 있다.

시진핑은 군 발전 목표 연도도 3단계로 구분했다. 이 3단계 목표가 국가 발전 목표와 맞물려 있다.
첫째, 군은 기계화를 기본적으로 달성하고 정보화의 중대한 진전을 이룬다. 둘째,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이룩하고 군 현대화를 이룬다. 셋째, 2050년에 부강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군은 세계 1류 군대를 달성한다.
중국 군의 발전 목표는 현대화/정보화/합동화다.

현대화는 첨단 무기를 도입하고 노후화된 장비도 현대화한다는 것이다. 군 정보화의 경우도 아직도 정보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합동화(중국어로 하면 聯合)인데 이게 쉽지 않다.

중국 군인들은 학교나 사회에서 충원이 되므로 사회문화가 반영된다. 중국은 제가 보기에 합동성이 다소 떨어지는 나라다. 예컨대 스포츠만 봐도 중국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종목은 대부분 개인전이지 단체전은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런 문화가 군 연합작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도 중국 군은 합동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군의 최고 결정자만 봐도 답이 나온다. 과거에는 주석 1명, 부주석 2명, 군사 위원이 8명이었는데 이게 4명으로 축소됐다. 후진타오 시기에 비교하면 8명에서 4명으로 줄어든 걸로 보이지만 장쩌민 때는 계속 4명이었다. 그래서 4명으로 환원됐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시진핑을 빼고 나면 중앙위원회 군 인사가 6명인데 과거엔 전부 육군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육군 2명이고 해군, 공군 등 비(非)육군이 4명으로 엄청나게 바뀌었다. 결국 군도 육해공 합동화로 가겠다는 것이다.

군의 인사 부분도 꽤 복잡하다. 19기 중앙위원은 204명인데 군 인사가 40명이다. 전체 인사에서 계속 20%가 군 관련 인사인 것은 비율을 유지했다. 이건 과거와 다르지 않은데 중요한 건 새로운 얼굴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점이다. 명단을 보면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왕치산 서기에 의하면 그동안 퇴출된 중국 군 장성만 160명이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만큼 군 내의 부패도 많았고 퇴출된 만큼 공석이 생겼다.

궈보슝 [출처: 바이두 백과]

궈보슝 [출처: 바이두 백과]

궈보슝, 쉬차이허우 등이 체포됐고 궈보슝은 무기징역, 쉬차이허우는 옥사했다(감방에서 암으로 죽었다)

군사위 부주석에 과거에 거론됐던 후보가 2명이었는데 팡펑후이와 장양이었다. 이 둘의 이름은 당 대회 몇 달전부터 사라졌고 이름을 아예 못 올렸다. 팡펑후이는 부패 죄목 등을 받았고 재판 계류 중이다. 장양은 11월 23일 가택 연금 중에 자살했다. 군 서열 3~4위인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것이다.

19차 당대회에는 당과 군의 관계도 더 확고히 정립됐다. 마오쩌둥, 덩샤오핑같이 당, 정, 군을 만들었거나 원로 역할을 한 사람은 공식 직함보다는 개인적 위상이 훨씬 중요하다. 그러나 소위 후(後)혁명 인사들인 장쩌민, 후진타오 등은 개인적 카리스마가 적기 때문에 공식 직함이 많아야 한다. 이들은 군과의 유대도 적다.

그러나 시진핑이 등장할 때는 달랐다. 시진핑은 군 경력도 있고 아버지 시중쉰이 군 혁명 원로다. 이제 2022년이 군 분야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대두되는 시기다. 시진핑이 후계자에게 군권을 넘겨 줄 건가, 아니면 "심화된 군 개혁을 후계자가 처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시진핑이 군권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19차 당대회의 내용만 보면 시진핑의 향후 군권 보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이 만들어놨다.

차이나랩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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