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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비트코인 광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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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앙일보 <2017년 12월 11일 38면>
비트코인 투기 광풍, 정부가 진정시킬 때 됐다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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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에 투기 광풍이 불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에서 지난 8일 1비트코인이 2499만원을 기록했다가 이틀 뒤 정부의 규제 검토 소식이 나오면서 1541만원으로 폭락했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은 올해에만 약 20배 상승하며 암호화폐 신드롬을 주도하고 있다. 20대 대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묻지마 투자’에 나서며 하루종일 비트코인 시세만 쳐다보는 ‘비트코인 좀비’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더리움 등 수십 가지 암호화폐가 등장하며 채굴기 판매와 투자 대행을 빙자한 각종 사기도 빈발하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란’을 연상케 하는 현상들이다.

암호화폐 광풍은 유독 한국에서 심하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한국만큼 비트코인에 빠진 나라는 없다. 한국은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핵폭탄이 터지는 지점)’”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최근 “전 세계에서 투자 열기가 가장 뜨거운 시장은 한국”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지만 암호화폐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20%가 넘는다. 한국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은 국제시세보다 무려 23%나 비싸다. 누가 봐도 투기이자 거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암호화폐 기술 자체는 혁신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비트코인의 핵심 요소인 블록체인은 수학적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신기술이다. 중앙은행 등 공급자 마음대로 유통수량을 조절할 수 없어 가치 보존 기능이 뛰어나다고도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을 일으킬 한 분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화폐로 현실화하는 데엔 여러 불안 요인이 남아 있다. 한때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마운트콕스의 파산처럼 해킹과 도난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다. ‘고래’라고 불리는 1000명의 큰손들이 세계 비트코인의 40%를 갖고 있어 언제든 가격 폭락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금 같은 다른 화폐 대용물이 담고 있는 내재가치가 없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맘만 먹으면 비슷한 암호화폐를 발행해 비트코인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 등도 비트코인을 화폐라기보다는 상품으로 간주하는 게 현실이다. 화폐의 기본 기능인 법적 안정성과 신뢰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여러모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미래는 확실치 않다. 정부가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를 두고 골치를 썩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투기 광풍은 별개의 문제다. 실체가 없는 게임 아이템에 이렇듯 온 국민이 달려든다면 정부가 가만히 있겠는가. 배춧값이 급등했는데 민간의 영역이라고 손 놓고 있을 건가. 그러기엔 닥쳐올 후유증이 너무 크다. 비트코인의 법적 지위나 화폐·상품 인정 여부는 신중하게 검토하더라도 지금의 과열된 시장을 진정시킬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설립을 허가제로 하고 거래 자격에도 일정 부분 제한을 가하는 등의 조치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2017년 12월 14일 23면>
비트코인, ‘거래 금지’ 않을 거라면 ‘과세’ 서둘러야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QR코드로 보는 관계기사 <한겨레>

정부가 암호화폐(가상통화) 투기거래 대응방안을 내놓은 13일 국내 거래소에서 암호화폐 가격은 큰 변동이 없었다.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한 거래자들의 믿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른 나라에도 거래 참여자가 많으니, 우리 정부 대책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어차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대책을 통해 정부가 암호화폐를 제도적으로 수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에 더 의미를 둬야 한다. 거래자들은 정부가 더 강력한 추가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부는 암호화폐가 금융상품도 아니고, 화폐는 더욱 아니라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금융기관의 가상통화 보유와 매입, 담보 취득을 금지한 것에 그런 시각이 담겼다. 비트코인 거래시장에 금융기관 자금이 공급되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는 암호화폐를 재화로 인정할지는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았다. 일부 당국자들의 말대로 암호화폐 거래가 ‘폰지 사기극’이라면 거래를 금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고 자유 거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재화로 보고 거래에 세금을 매겨야 할 것이다. 정부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과세 문제를 검토하기로 했다. 거래를 금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기 때문일 텐데, 그렇다면 과세를 서두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투기 심리는 한번 불붙고 나면 정부 대책으로 가라앉히기가 매우 어렵다. 오로지 가격에 낀 거품의 크기를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때 투기판이 깨질 뿐이다. 정부가 암호화폐 가격이나 거래량을 봐가며 조급하게 굴지 말아야 할 이유다. 그보다는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대책을 보완해 가야 한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협조를 얻어 고교생 이하 미성년자의 계좌 개설과 거래를 금지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 투명성 확보와 투자자 보호 강화 조처는 서둘러야 한다. 다단계·유사수신 방식의 암호화폐 투자금 모집에 대해서도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

거래 규제가 블록체인 기술 발전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주장에 정부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암호화폐 거래가 활성화된다고 해서 블록체인 기술개발 기업으로 돈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거래업자만 돈을 벌 뿐이다.

논리 vs 논리
투기 후유증 막을 대책 시급 vs 재화로 보고 세금 매겨야

블록체인으로 연결된 암호화폐를 상징하는 이미지.

블록체인으로 연결된 암호화폐를 상징하는 이미지.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 열풍이 거세다.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하나(1BTC)의 가격은 연초에 120만원대였다. 그러다 8월 들어서는 500만원을 돌파하더니, 지난 8일에는 2500만원까지 치솟았다가 이틀 만에 1500만원대로 떨어졌다. ‘주식 시장 1년의 변화가 코인 시장에서는 하루에 일어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은 매우 심하다. 그 때문에 단기차익을 노린 투기자금이 몰려들어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3일 법무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암호화폐 규제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미성년자·외국인 계좌 개설과 거래 금지’ ‘금융기관의 가상통화 보유·매입 금지’ ‘가상통화 과세 여부 검토’ ‘가상통화 범죄 엄정단속 및 환치기 실태 조사’ ‘공정위의 거래소 약관 직권조사’ 등의 대책이 담겨 있다.

중앙과 한겨레의 사설은 대체로 정부의 대처와 비슷한 논리를 펼친다. 한겨레와 중앙은 암호화폐가 화폐로 인정받기에 미흡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정부는 이번 규제안에서 금융기관들이 가상통화를 보유하거나 매입·담보로 취득하는 것을 금지했다. 한겨레는 이를 놓고 정부가 “암호화폐가 금융상품도 아니고 화폐는 더욱 아니라는 견해를 분명히” 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중앙 또한 암호화폐에 “금 같은 다른 화폐 대용물이 담고 있는 내재가치가 없을”뿐더러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맘만 먹으면 비슷한 암호화폐를 발행해 비트코인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실제로 지난 10월 러시아는 국가 공인 암호화폐 ‘크립토루블(cryptoruble)’을 발행한 바 있다. 중국과 싱가포르도 국가 주도의 암호화폐 발행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국가가 보증해 주지 않는 사설 암호화폐들의 미래가 밝을 리 없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정당한 상품인지에 대해서는 두 사설의 입장이 미묘하게 갈린다. 우리 정부는 암호화폐의 거래를 ‘규제’할 뿐 중국처럼 ‘금지’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한겨레 사설의 “다른 나라에도 거래 참여자가 많으니 우리 정부 대책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어차피 제한적”이라는 문구에 잘 담겨 있다. 암호화폐는 대부분 해외 사이트에서 거래된다. 따라서 정부 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을뿐더러 본인 인증 절차도 없다. 현실적으로 암호화폐 거래를 막을 방법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한겨레는 “거래를 금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과세를 서두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정부가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일을 정당한 거래로 인정하는 꼴이 돼버린다. 정부가 그동안 암호화폐 거래소를 인가나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운영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거래가 법적인 인허가 대상이라는 것은 암호화폐가 제도권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암호화폐 가격이나 거래량을 봐가며 조급하게 굴지 말고,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대책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한겨레의 주장은 암호화폐가 상품이 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중앙은 “정부가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를 두고 골치를 썩이고 있는 것”과 “투기 광풍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긋는다. 중앙 사설은 암호화폐가 정당한 상품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 게임 아이템에 이렇듯 온 국민이 달려든다면 정부가 가만히 있겠는가. 배춧값이 급등했는데 민간의 영역이라고 손 놓고 있을 건가”라는 중앙의 질책은 암호화폐 투기를 여느 범죄와 같은 선상에 놓고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다가온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그러나 중앙 또한 암호화폐를 화폐·상품으로 인정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중앙이 “아무런 규제가 없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설립을 허가제로 하고, 거래 자격에도 일정 부분 제한을 가하는 등의 조치”를 제안하는 모습은 암호화폐 거래에 세금을 부여하자는 한겨레의 태도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법적 지위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현실적으로 거래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는 취지다. 암호화폐 투기 광풍에 대한 신중하고 현명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