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려대·서울시립대에 비장애인 학생 4명이 장애인등록증을 위조해 합격한 사건이 벌어졌다. 교육부는 해당 학생을 경찰에 고발했고, 현재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조사 중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실제 장애인증명서에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 등을 오려 붙이고 홀로그램까지 넣어 위조한 등록증을 대학 측에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대입에서 장애인증명서 같은 공문서를 위조하는 것은 예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진화한 방식이라 관심을 모으고 있다.
70~80년대 시험장서 '협박'해 커닝 시도 #90년대엔 주로 권력형 입시부정 발생 #과학기술 발달로 2000년 이후 지능화
사실 시험과 관련한 각종 부정행위가 문제가 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부터 수법과 형태만 달라졌을 뿐 계속 이어져 왔다. 대입은 물론, 공무원·토익시험 등에서도 시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30년 전에는 단순 협박이나 시험문제 유출에 그쳤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입시 비리 형태도 나날이 첨단화하고 있다.
1970~80년대에는 흉기로 위협하거나 협박하는 등 ‘막무가내식’ 입시부정이 주를 이뤘다. 82년부터 시행된 학력고사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대입의 성패가 갈렸다. 커닝을 원활히 하기 위해 고사장에서 협박이나 폭력 같은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1985년 11월 실시된 학력고사에선 한 수험생이 앞에 앉은 수험생의 등을 칼로 찌르며 “답 좀 알려 달라”고 위협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감독관에게 적발되자 해당 수험생은 감독관까지 칼로 위협했지만, 당해 시험은 무효처리가 됐다. 대입고사를 관장하는 중앙교육평가원(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다음 해부터 대입고사부정방지책을 마련해 감독관과 경찰을 증원하고, 수험생이 위협당하지 않도록 감시를 강화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투명도가 높지 않았던 1980~90년대에는 교육계에서도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입시 비리’가 판을 쳤다. 1991년 서울대에서는 목관·첼로전공 심사위원들이 학부모에게 금품을 받고 실기평가에서 해당 학생들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게 적발됐다. 해당 학생들은 합격이 취소됐고, 재시험을 통해 다시 학생을 선발했다. 이후에는 입시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음대 실기평가 때 심사위원과 학생 간의 칸막이가 설치됐다.
1993년에는 학력고사 출제기관인 국립교육평가원 소속 장학사가 문제를 유출하는 일도 발생했다. 장학사가 친구인 A사립대 재단이사장인 딸에게 정답을 사전에 유출한 것이다. 해당 학생은 내신성적은 반에서 꼴등이었지만, 정답을 알고 있었던 덕분에 대입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시기는 다르지만 지난해 발생했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도 권력을 이용한 입시비리였다. 2015학년도 이화여대 체육특기자전형에 지원한 정유라는 서류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면접에서 1위를 했다. 당시 정유라는 면접을 치를 때 금메달을 갖고 가 면접관들에게 보여주는 등 규정을 어겼지만 합격했다. 정유라는 2016년 12월 이화여대 입학이 취소됐고, 이화여대는 2019학년도 입시부터 체육특기자 전형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때는 수험생 대신 다른 사람이 시험을 대신 치르는 대리시험도 성행했다. 1993년에는 명문대 학생들이 대리시험을 보게 하고, 응시생 학부모들로부터 거액을 받은 현직 고교 교사와 입시 브로커 등이 경찰에 붙잡힌 일도 있었다. 오세목 중동고 교장은 “대부분 입시 비리는 사회고위층에서 많이 발생했다”며 “가장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교육분야에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수법은 더욱 노련해지고 전문적으로 진화했다. 특히 휴대폰 등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문자 송신 시스템을 이용한 조직적인 부정행위가 가능해졌다. 2004년에는 사전에 모의한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두드리는 방식으로 후배들에게 정답을 전달하고, 고시원에 대기하고 있던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답을 전송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총 314명의 성적이 무효처리 됐고, 부정행위를 주도한 7명에게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 등 실형이 선고됐다. 교육부는 2006년부터 휴대전화·전자사전 등의 스마트기기의 고사장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수시전형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입시전형을 노린 부정행위도 증가했다. 2012년에는 농어촌전형이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노려 위장 전입 해 입시 부정 저지른 사례가 적발됐다. 감사원 조사 결과 공항 활주로나 창고, 고추밭에 전입신고 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7급 공무원 시험 성적과 합격자 명단을 조작을 시도한 공시생이 붙잡히기도 했다. 송모(27)씨는 2011학년도와 2012학년도 수능에 응시하면서 의사를 속여 발급받은 진단서를 제출해 과목당 시험시간을 1.5배 연장했고, 시험이 끝난 후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정답을 확인해 고득점을 얻었다.
최근 발생한 고려대·서울시립대 장애인특별전형 입시비리는 공문서인 장애인증명서를 위조했다는 점에서 한 차원 더 발전한 방식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고려대 경영학과 J씨(22),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K씨(23)와 L씨(22), 도시행정학과에 합격했다가 자퇴한 K씨(22) 등 4명은 2013~2014학년도 대입 장애인특별전형에서 위조된 시각장애인 6급 증명서를 대학에 제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은 “입시 부정에 가담한 브로커 뿐만 아니라 학부모·학생도 처벌해야 한다”며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사회분위기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민희·이태윤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