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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승일의 시시각각

비트코인과 알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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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홍승일 중앙디자인웍스 대표

홍승일 중앙디자인웍스 대표

요즘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인공지능(AI) 바둑의 발전상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330여 명 프로기사의 미래가 염려스럽다. 바둑 사이트에서 프로 고수의 대결이 벌어지면 박정환-커제쯤 되는 한·중 최정상의 빅 이벤트라면 모를까, 한쪽 편이 AI라야 네티즌 구경꾼이 모이고 흥행이 된다. 중국 한큐 바둑 사이트에선 AI가 바둑 해설까지 해 준다. 이제 인류 바둑의 정복은 구글 알파고까지 갈 것도 없다. 중국 텐센트가 알파고 적수로 개발한 ‘절예’는 이미 중국 프로 최고수에게 2점 접바둑으로 판판이 이긴다. 최고수끼리 두는 바둑조차 시시해 보인다. “마인드 스포츠에서 사람이 설 땅이 없어지고 있다”고 한국기원은 탄식한다. 바둑만큼 게임룰이 복잡하지 않은 장기나 체스는 스마트폰에 AI 모바일 앱만 깔아도 보통사람이 세계 최정상 선수를 이길 수 있게 됐다.

암호화폐, 광풍인가 산고인가 #경제부총리 거품 대처 시험대

AI에 주눅이 든 마인드 스포츠 선수들 신세처럼 지구촌 법정화폐도 시나브로 다가온 비트코인(Bitcoin) 앞에서 초라해진 모습이다. 2009년 1월 탄생 직후 코인 한 개 값이 39센트이던 것이 1만5000달러 넘게 치솟았으니 세계 기축통화 그린 백(Greenback)의 가치가 8년 만에 무려 4만 분의 1 정도로 폭락했단 말인가. 유력 암호화폐 이더리움을 만들어낸 비탈릭 부테린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작금의 상황은 분명 거품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금융위기·양적완화·재정적자처럼 기성 화폐를 훼손한 업보를 무시할 수 없다.

알파고와 절예가 재능에 대한 정보기술(IT)의 도전이라면 비트코인은 정부에 대한 IT의 도전이다. “갈수록 허약해지는 정부의 권위, 법화(法貨)보다 불록체인이라는 하이테크에 더 큰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팀 우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중앙집권 대신 지방자치를 연상케 하는 분산 정보 시스템이 그 요체다. 위조·변조와 해킹 가능성을 차단한 ‘안전 기술(Trust machine)’임을 뽐낸다.

그렇더라도 암호화폐에 대한 우리 투자자들의 환호는 과도해 보인다. 광풍이니 거품이니 온갖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200만 명이 하루 6조원어치 거래를 바벨탑처럼 쌓아 올린다. “내가 바가지를 썼다면 나보다 더 비싸게 사 줄 어수룩한 바보가 있지 않겠느냐”는 근거 없는 자기기만에 쉽사리 빠져든다. 하긴 ‘비트코인=로또’ 한탕주의 등식이 기승을 부릴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곳곳에서 나오는 헬조선·흙수저·이생망 절규는, 구슬픈 베팅에 기대 인생역전 한번 이뤄 보겠다는 갈구와 동전 앞뒤다. 세계경제 비중 2%도 되지 않는 나라의 암호화폐 거래액 비중이 20%를 웃도는 까닭이다.

이쯤 해서 절친한 벗인 두 유명인사의 상반된 시각을 통해 균형을 잡아볼 필요가 있겠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IT의 구루답게 “비트코인이 달러보다 낫다”고 평한 데 반해, 인터넷 주식 사지 않기로 유명한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비트코인은 버블”이라고 단언한다. 적당한 거품은 성장의 윤활유지만 과도한 거품은 산업 뿌리까지 죽이는 독약이다. 숱한 개미에게 악몽을 남긴 새롬기술을 비롯해 2000년대 초반 IT 거품 붕괴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후 ‘벤처업체=사기꾼’이라는 망령이 창투시장을 10년 넘게 배회했다.

한국은 바둑 AI의 시험무대로 구글의 선택을 받았지만, 우리 투자 역군들은 암호화폐 테스트베드의 선봉장을 자원한 듯하다. 블록체인이 비트코인과 도매금으로 10년간 악몽과 저주의 대명사로 불리면 되겠는가. 한바탕 무한 질주가 파국을 맞을지, 4차 산업혁명 잉태의 산고(産苦)가 될지 김동연 경제팀의 연착륙 조종술을 가늠할 시험무대다.

홍승일 중앙디자인웍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