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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는 공범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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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국제부 차장

이경희 국제부 차장

만 5세 둘째는 유치원 추첨에 다 떨어져 지난해 유아학원에 다녔다. 학원은 도중에 교육청 인가를 받아 유치원으로 전환됐다. 유치원으로 바뀌자마자 무상교육 대상에 편입돼 교육비 중 학부모 부담금 22만원을 감면받았다. 원에선 방과후 특강 1개는 제값 주고 들어야 하지만 2개를 들으면 7만원을 깎아준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계산식이 나오나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특강 2개를 등록한 아이들은 죄다 종일반으로 신고해 국가 지원금을 타내는 꼼수를 부린 거였다. 졸지에 공범이 된 게 불쾌했지만 신고는 못했다. 원에 문제가 생기면 아이를 어찌할 방법이 없어서였다.

올해부턴 병설 유치원 에듀케어반(종일반)에 당첨돼 다니고 있다. 지난해 월 70만원쯤 내던 교육비가 0원으로 줄었다. 순전히 운이 좋아 질 좋은 교육을 공짜로 받는 게 꿈 같고 의아하다. 에듀케어반은 오후 4시 이전엔 하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중간에 빼내 학원에 보내는 부모들이 있다. 최소 출석 일수(월 15일)만 채우면 국가 지원금을 토해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초등학교 3학년 큰 아이는 3년째 돌봄교실에 다니고 있다. 간식비만 제외하곤 무상으로 돌봐줘 맞벌이에겐 최고다. 3학년이 되자 아이는 돌봄이 지겹다고 한다.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다. 동급생 대부분 돌봄에서 간식만 받아 먹고 학원에 간다. 사교육을 억제하는 것도 돌봄교실 개설 목적이라 일단 학원에 가면 되돌아올 수 없다는 규정은 있지만 몇 분을 머물다 가든 상관하지 않는다.

공짜라고 다 공짜가 아니다. 무상교육부터 돌봄까지 세금으로 부모 부담금을 없앤 것일뿐 사립 유치원이나 학원보다 돈이 덜 드는 게 아니다. 어린이집 무상보육도 세금이 샌다. 종일보육으로 국가 지원금은 다 받아놓고 아이가 기관에 오래 있으면 정서 발달에 안 좋다며 오후 4시에 데려가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한술 더 떠 어린이집에선 점심만 먹이고 아이를 데려가는 부모도 있었다.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우리 엄마는 왜 안 오나’ 기다릴 나머지 아이들의 상실감은 배려하지 않는 듯해 원망스러웠다.

멀쩡한 보도블록 뜯어내는 데엔 분노하지만 이런 꼼수엔 모두가 눈감고 입 닫고 기꺼이 공범자가 된다. 당장 내 아이를 위해서라며 동조하지만, 10여 년 뒤면 지금 낭비한 세금이 자식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공짜라 대충 해도 된다고 여기지 못하게 편법으로 활용한 이에겐 징벌적 비용을 부담시킬 필요가 있다. 더욱 절실한 이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이경희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