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투덜투덜 택시기사'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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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택시 기사들이 국산 자동차의 품질을 높이는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은 기사들의 의견을 종합하는 별도 팀까지 운영해 이를 품질 개선에 적극 반영한다. 전국에 운행 중인 택시는 24만 여대. 개인택시가 15만여 대, 법인택시가 9만여 대다.

현대자동차는 2000년 EF쏘나타의 브레이크 라이닝(바퀴의 제동부분) 강도를 강화해 품질을 개선했다. 택시 기사들이 '라이닝 재질이 물러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체해야 한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연구소는 내구성 테스트를 해 본 결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강도를 높였다. 이를 수출차에도 적용해 내구성과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뉴쏘나타 택시에는 그랜저 고급형에만 적용한 공기정화기가 달려 있다.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느낀 기사들이 공기정화기를 기본 사양으로 해 달라고 요구한 결과다. 차 값을 낮추려고 장착했던 드럼식(뒷바퀴) 브레이크도 고급형인 디스크 형식으로 바꿨다. 드럼식은 소음이 많다는 의견을 수용한 결과다. LPG 가스통 용량도 70→85ℓ로 늘렸다. 하루 한 번만 충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건의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분기에 한두 번 정도 택시기사들의 의견을 듣고 품질본부와 연구소에 개선사항을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두섭 요코하마국립대학 경영학부 교수는 "도요타도 1970년대 택시 기사들의 의견을 듣고 내구성과 품질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며 "택시는 연구소에서 해보지 못한 내구성과 품질을 최종 점검하는 도로 위의 실험실"이라고 평했다. 르노삼성차는 SM5 택시를 시판하면서 의견 청취팀을 만들어 기사 요구를 적극 반영했다. 기사들은 우선 안전성 향상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운전석 에어백과 브레이크잠김방지장치(EBD-ABS)를 저렴하게 개발해 달았다. 엔진 내구성에 대한 지적에는 일반 점화 플러그보다 두 배 이상 비싼 백금 점화 플러그 장착이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원가는 올라갔지만 내구성이 크게 좋아졌다. 장시간 운전에 따른 편의장치 개선도 잇따랐다. 앞좌석 열선 시트는 기본사양으로 했고 핸즈프리 키트의 조잡한 스위치도 기사들의 의견에 따라 간결하게 변경했다. 길게 누르면 끝까지 닫히고 중간에 물체가 끼면 자동으로 멈추는'인텔리전트 파워 윈도'도 기사들의 아이디어다.

로노삼성차의 서규억 홍보팀장은 "기사들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택시는 싸게 팔면 된다'는 고정 관념을 탈피해 내구성과 편의장치를 개선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는 상품성이 좋아졌다. 지난해 11월 나온 로체 택시에는 허리가 편한 전용 시트가 달려 있다. 척추골격과 흡사하게 설계된 '슈크라 요추받침 장치를'를 적용했다. 쿠션 스프링도 자가용보다 내구성을 강화해 시트 변형을 최소화했다.

GM대우차는 지난 1월 시판한 중형차 토스카 개발 때 기사 불만에 귀를 기울였다. 이전 모델인 매그너스의 판매 부진 사유가 기사들의 불만을 제때 해소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회사 관계자는 "토스카의 내구성과 첨단 편의장치에는 기사 의견이 대폭 반영됐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시승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토스카의 우수성을 알리면서 동시에 개선 사항을 듣고 제품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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