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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어떻게 늙을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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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울퉁불퉁 근육을 자랑하는 70대 미국인 남성의 사진을 서점에서 마주치고 ‘뜨악’한 적이 있다. 피트니스 책 광고였는데, 상의 탈의 어르신이 “어떠냐 내 이두박근이!”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포즈를 취했다. 사진 아래로는 ‘20대 못지않은 근육, 70대에도 가능합니다’란 문구. 당당해 보이기는커녕 솔직히 서글펐다. 우리는 이렇게나 늙어도 기어이 젊고 싶은 것인가. 나이를 이유로 차별을 하는 에이지즘(ageism)도 늙어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근육을 키우기 위해 불철주야 운동했을 모델의 노력엔 경의를 표하지만 왠지 씁쓸했다. 열 밤 더 자면 한 살 더 먹는 연말이라 더 그런지도.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2015년 출간된 『저도 중년은 처음입니다』에서 작가 사카이 준코는 이렇게 적었다. “스스로를 아줌마라고 인정할 수 없는 중년 여성들이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추함과 불안함. 그것은 90세 인생 시대에 중년을 맞이한 버블 세대들이 내뿜는 새로운 분비물이다. (중략) 그 분비물을 다 씻어 내고 바삭한 노인이 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르신 모델은 이런 ‘바삭한 노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불편하다.

하긴, 남 얘기 할 것도 없다. 나 자신은 ‘바삭한 노인’이 될 준비가 돼 있을까. 로마 시대 정치가·웅변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를 펼쳤다. 영어 번역서의 제목 『How to Grow Old (어떻게 늙을 것인가)』는 더욱 단도직입적이다. 키케로가 이 책을 쓴 건 기원전 45년인데, 두 번의 이혼과 금지옥엽 딸의 죽음, 정치적 고립무원의 삼중고를 겪은 최악의 해였다. 인생의 쓴맛·신맛을 다 본 그의 조언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육체적 한계를 받아들여라” “몸 아닌 마음의 근육을 키워라”는 식이다. 결론은 “노년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라는 것.

동시대 작가인 임경선은 좀 더 구체적 조언을 건넨다. 『태도에 관하여』에서 그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썼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불평하거나 투덜대거나 까탈스럽게 굴지 않고, 무의미한 말을 시끄럽게 하지 않고, 떼지어 몰려다니지 않고 나대지 않으면서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가능한 한 계속하는 것.” 2018년엔 잘 늙고 싶다. 굿바이, 2017년.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