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오스트리아는 말 그대로 겨울왕국이다. 눈부시도록 새하얀 설경과 동화 같은 크리스마스 마켓, 그리고 이 계절만의 별미까지. 오감이 즐거운 볼거리·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이렇게 유럽인들 사이에선 이미 최고의 겨울 여행지로 정평이 난 오스트리아로 향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2018년 200주년을 맞는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흔적을 좇는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엔 잘츠부르크에 가야 한다
캐럴의 전설로 손꼽히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고향은 잘츠부르크에서 북쪽으로 20㎞ 떨어진 오번도르프(Oberndorf)다. 잘자흐강을 끼고 독일과 국경을 접한 마을로, 강줄기가 굽이치는 평화로운 이 마을의 성니콜라스 성당에서 1818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탄생했다. 노래가 초연된 원래 성당은 1800년대 후반 잘자흐강 범람으로 철거됐다. 1924년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어진 뒤 ‘고요한 밤 성당(Stille Nacht Kapelle)’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고향 #눈부신 자연 있는 음악의 성지 #크리스마스 시즌 최고 여행지로
크리스마스 시즌 성당 앞에는 ‘고요한 밤 우체국’이 열리는데 크리스마스 기념우표 위에 ‘고요한 밤 성당’이 새겨진 소인을 찍어 엽서나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한다. 이처럼 앞으로 1년 간 오스트리아에선 여러 지역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념 행사가 계속 열린다. 전시와 공연은 물론 ‘고요한 밤’ 맥주를 내놓는 양조장도 있다. 이외에 노래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데 기여한 이들에 관한 기록과 악보 등 관련 유물이 보존된 티롤주의 아헨 호수와 푸겐, 오버외스터라이히주의 슈타이어도 가볼만하다.
아헨 호수는 동계 올림픽을 두 번이나 개최한 눈의 도시 인스브루크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달리면 닿는 휴양지다. 그림 같은 풍경을 따라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가면 거짓말처럼 호수가 펼쳐진다. 고도 950m, 최대 깊이 130m가 넘는다고 한다. 호수가 자리 잡은 모양새가 마치 산과 산이 맞잡고 호숫물을 높은 대지에 가두어 담아놓은 듯하다. 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호수는 길이 10㎞, 폭 1㎞에 이른다. 티롤주 최대 규모로, ‘알프스의 피요르드’‘티롤의 바다’라는 별명을 왜 얻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 아헨호수는 캠핑 등 야외활동을 즐기는 여름 휴양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겨우내 쌓인 눈이 만들어낸 절경을 만끽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겨울 여행지로도 그만이다. 누구도 밟지 않은 곱고 깨끗한 눈은 사방천지에 내려앉아 있고, 투명한 호수가 새파란 하늘과 눈 덮은 산자락을 거울처럼 담아낸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알프스 산맥의 질러탈 골짜기 일대에 자리 잡은 푸겐 역시 사계절 휴양지다. 여름엔 깊은 계곡을 따라 1000㎞ 가까이 이어진 트래킹 코스를, 겨울이면 인적 드문 광활한 슬로프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도시를 벗어난 이런 마을을 여행하는 재미는 마을과 마을을 이동할 때 가장 커진다. 차창을 액자 삼아 경치를 감상하면서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것이야말로 유럽 여행의 백미이니 말이다.
자연 속에서 차분하고 고요한 여행을 즐겼다면, 이젠 화려하고 신나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겨볼 때다.
유럽 전역에선 매년 11월 말부터 연말까지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독일어권 지역 크리스마스 마켓의 역사는 50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시장은 주로 교회 앞 광장에서 열렸는데, 교인을 손님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17세기 이후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크리스마스의 주요 이벤트로 자리 잡으면서 주객이 전도됐다.
잘츠부르크 크리스마스 마켓도 15세기까지 기원이 거슬러 간다. 대성당 앞 광장에 널찍하게 펼쳐진 마켓은 웅장한 바로크 양식 건축물 사이 촘촘하게 자리 잡았다. 꼬마전구가 반짝이는 가판점마다 아기자기한 용품으로 손님을 끌어당긴다. 정교하게 만든 수공예품, 크리스마스 장식, 향초, 그리고 유럽의 추위를 막아주는 모자와 장갑 같은 방한용품이 주요 아이템이다.
갖가지 물건을 팔고 있지만 최고 인기는 먹거리다. 넓은 광장을 가득 메운 가판점들은 너덧 집 건너 한 곳꼴로 먹거리를 판다. 쿠키와 사탕, 크레페 등 간식을 손에 놓을 틈이 없다. 그중 가장 든든하게 배를 채워주는 오스트리아 전통 핫도그 ‘보스나’가 가장 인기다. 바게트 빵 사이에 잘 구운 두툼한 소시지를 끼워 넣고 향신료와 머스터드 등을 뿌린 음식인데, 달짝지근한 음료수를 당기게 만드는 짭짤한 게 한 끼 식사로 손색없다. 따뜻한 와인 글뤼바인을 파는 가게도 붐빈다. 너나 할 것 없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데운 와인을 홀짝인다. 축제엔 무릇 술이 빠질 수 없지만 으슬으슬한 유럽 겨울 날씨에 몸을 덥혀주는 글뤼바인을 도저히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다.
잘츠부르크 크리스마스 마켓이 유럽 정통 스타일이라면 슈타이어 마켓은 개성이 넘친다. 슈타이어는 오버외스터라이히주에 있는 천년 고도(古都)로, 10세기 중세 유럽 건축물의 보고다. 슈베르트가 휴가차 들렀다 가곡 ‘송어’를 썼을 만큼 음악과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슈타이어는 철강 산업으로 일찍이 부를 일궜다. 크리스마스 마켓에도 도시 역사를 간직한 수많은 대장장이가 판을 펼친다. 뜨거운 불에 달군 쇠를 망치로 수십 번 두드렸다 차가운 물통에 담가 치이익 소리가 나도록 식히는 장면은 아기자기한 맛은 없어도 에너지 넘치는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겨울이면 오후 4시부터 어둠이 깔리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망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와 겨울의 낭만을 만끽하고 싶다면 이만한 곳도 없다. 고요와 적막 가운데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고, 반짝이는 꼬마전구와 환상적인 조명 사이에서 동심을 되찾고 싶을 때도 좋은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여행정보= 오스트리아 티롤·잘츠부르크·외스터라이히주와 고루 가까운 도시는 잘츠부르크다. 인천~잘츠부르크 직항편은 없기에 주로 뮌헨을 경유한다. 잘츠부르크·인스부르크 등에 기차로 2시간 안팎이면 닿을 수 있다. 뮌헨까지는 루프트한자 항공이 주 5회(일·화·목·금·토) 운항한다. 작은 마을을 이동하려면 자동차를 렌트하는 게 편하다. 요금은 24시간 기준 중형차로 100~120유로(13만~15만5000원) 선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는 2018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2018년 9월 29일부터 2019년 2월 2일까지 잘츠부르크·오번도르프 등 관련 지역 박물관 9곳이 참여해 기념전을 한다. 상세 정보는 www.stillenacht.com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