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도 달라져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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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법과 제도가 시대정신이나 조류에 걸맞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는커녕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성인에게 유아기나 청년기의 옷을 입힐 수 없듯이 신체를 담는 옷은 그때 그때의 유행과 감각, 신체조건에 따라 색깔과 모양을 맞추고 크기를 달리해야 한다. 법과 제도 역시 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시대가 변하고 저만큼 앞서 가는데 낡은 법과 제도를 규범으로 삼는다면 효능도 발휘 못하고 숱한 역작용만 낳는다. 강압적 권위주의 시대에 맞는 법이 민주화시대에 통할 수가 없다.
법과 제도는 어느 정도 보수성을 지녀야 하고 경성이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시대상황과 변화추세에 유연성을 갖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법이 되고 죽은 법이 되게 마련이다. 그것이 정권유지나 권력남용을 가능케 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고 군데군데 독소조항이 들어 있는 법일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대한변협이 며칠 전 정기총회에서 현행법원조직법과 검찰청 법, 변호사법 등의 개 정을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개정요강에는 재야법조인의 이해와 무관하지 않은 내용이 얼마쯤 담겨 있긴 해도 법조계 전반을 민주화하자는 취지가 전면에 흐르고 있다.
검찰청 법만 해도 검찰총장을 임기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나 상명하복 규정과 검사직급제도의 폐지 등은 검찰을 검찰답게 하기 위해서는 거의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사안이다.
지금처럼 검찰총장의 신분이 임명권자의 손에 의해 하루 아침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는 검찰의 위상은 물으나 마 나다.
박종철 군 사건, 권양 사건에서 보았듯이 검찰이 독자적인 수사를 펴지 못하고「관계기관 대책회의」나 외풍의 입김에서 못 벗어났던 것도 근본을 따지자면 이에 연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명하복규정만 해도 그렇다. 공무원 법에는 모든 공무원은 상사의 명령과 지시에 복종토록 규정하고 있다. 검사도 엄연히 공무원일진대 같은 내용을 검찰청 법에 새삼스럽게 삽입, 검사의 독립성을 자극시킬 필요가 없다. 더구나 검사의 직급을 세분해 상사의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승진의 기회를 주지 않는 등 악 이용할 여지가 다분히 있다.
이점에서는 부장판사 제를 두고 있는 법관도 마찬가지다. 또 법원의 법률제안권이나 예산제출권을 인정치 않고 있는 것도 사법부독립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법원이 쓸 돈줄을 행정부가 쥐고 있는 저의나 사정이 어떠하든 간에 모양부터 좋지 않다.
이밖에 법무부장관이 쥐고 있는 변호사업무 정지명령제도 역시 지금까지 인권변호사에게 행해 온 폐습에 비추어서도 얼마나 악용했던가를 알 수 있다. 정의와 법률이 존중되는 사회가 아니면 진정한 민주사회라 할 수 없고 강제된 질서와 카오스의 연속일 뿐이다. 정의와 법률이 존중되고 법조계전반이 국민의 신뢰와 권위를 되찾는 길은 자율과 독립성을 갖는 것뿐임을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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