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핵 협정과 미국의 이중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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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지난주 뉴델리에서 양국 간 핵 협력 협정에 최종 합의했다. 22기에 달하는 인도의 원자로를 민수용과 군사용으로 분리, 민수용 원자로(14기)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하에 두는 조건으로 미국이 인도에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핵기술과 장비, 연료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인도는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지원은 지원대로 받으면서 국제적 감시 체제 밖에서 군사용 핵 개발을 계속할 수 있는 파격적 '특권'을 누리게 됐다.

핵확산금지조약(NPT) 비가입국으로 이미 30~35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예외적 특별 대우는 핵무기의 수평적.수직적 확산을 금지하고 있는 NPT 체제의 기본정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NPT는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 등 5개국에 한해 핵 보유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인도가 '6대 핵 강국'의 지위를 미국으로부터 공인받게 된 셈이다.

NPT 체제의 토대를 미국 스스로 허물었다는 비판과 함께 미국의 이중잣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 견제를 위해서는 인도를 포섭해야 한다는 전략적 측면과 민수용 원자력 기술과 장비의 판로 확보라는 경제적 측면을 고려한 미국의 현실적 선택이라는 점을 물론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미국이 NPT 체제의 보루를 자처하기는 어렵게 됐다. 지난 35년간 힘겹게 유지돼 온 NPT 체제가 미국-인도 핵협정을 계기로 사실상 와해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 파장은 당장 유엔 안보리에 회부된 이란의 핵 개발을 막을 논리적 명분의 약화로 현실화할 전망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이란.북한.파키스탄과 달리 인도는 핵의 외부 유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민주주의국가이며, NPT 체제 밖에서 '합법적'으로 핵을 개발한 나라라고 미국은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대로라면 일본이나 독일 같은 나라가 핵 보유를 선언하고 나설 경우 저지할 명분이 약해진다. 또 북한에 이어 이란이 NPT 탈퇴를 선언하고, 핵 개발을 공식화할 경우 무슨 논리로 대항할 것인가.

'핵 보유국' 인도와의 전략적 연대를 통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미국의 구상이 뜻대로 될지도 의문이다. 전통적으로 독자 노선을 추구해 온 인도는 러시아.중국과도 연대를 추구해 왔다. 인도라는 코끼리를 키운 결과가 미국의 의도대로 유라시아에서 미국-일본-인도 축의 구축보다는 러시아.중국과 맞먹는 인도라는 새로운 독자 축의 부상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합의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협정 비준 과정이나 NPT 비가입국에 대해 핵기술 이전을 금지한 미 원자력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이런 목소리들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아울러 45개 핵공급그룹(NSG) 국가들도 이번 합의를 NPT 체제의 존폐 위기라는 관점에서 냉정히 득실을 따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