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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에 세우는 첫 '평화의 소녀상, 총학생회 모금활동 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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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에 세워질 평화의 소녀상. 점토 상태의 모습으로, 표면은 청동으로 마감될 예정이다. [사진 대구대]

대구대에 세워질 평화의 소녀상. 점토 상태의 모습으로, 표면은 청동으로 마감될 예정이다. [사진 대구대]

#.대구대 김선휘(26·스포츠레저학과 4년) 총학생회장은 지난 9월 초 대구에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0)를 찾았다. 대학 축제 기간 평화의 소녀상 건립의 필요성을 알리는 영상 제작을 위해 할머니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학교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고 싶다는 학생들이 찾아와줘 고맙다"며 눈물을 보였다.

21일 대구대 캠퍼스에서 제막식 #이용수 할머니도 참석해 축사 #청동재질로 단발머리 아니라 땋은머리가 특징 #걸상 아니라 벤치에 앉은 상태로 국화들고 있어

속초 청초호 호수공원 평화의 소녀상이 털모자 털목도리와 함께 누군가 가져다준 담요를 두르고 있다.[연합뉴스]

속초 청초호 호수공원 평화의 소녀상이 털모자 털목도리와 함께 누군가 가져다준 담요를 두르고 있다.[연합뉴스]

#.축제 기간(19~21일)인 지난 9월 중순 경북 경산시 대구대학교. 주황색 어깨띠와 현수막을 든 대구대 총학생회 소속 학생 10여명이 모금활동을 펼쳤다. 지나가는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우리가 강요에 못이겨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합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 후원자가 되어 주세요."라면서다. 동참 의사를 보이는 이들에겐 소녀상 건립 필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서명을 받았다.

강원 춘천시 의암공원에서 열린 '춘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소녀상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연합뉴스]

강원 춘천시 의암공원에서 열린 '춘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소녀상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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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에 있는 대구대학교 캠퍼스에 오는 21일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다. 대구대학교 총학생회가 지난 9월부터 3개월간 교내 학생, 교직원을 대상으로 모금 활동을 펼치고, 조각가 등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다. 대구대는 21일 오전 11시 캠퍼스 웅지관(학생회관) 앞 빛광장에서 제막식을 연다고 18일 밝혔다. 이 자리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직접 참석해 축사한다. 평화의 소녀상이 대학 캠퍼스 내에 세워지게 된 것은 국내 첫 사례다.

전북 전주시 한 시내버스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전북 전주시 한 시내버스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총학생회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은 기존 평화의 소녀상과는 차별화돼 있다. 걸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아니다. 벤치에 앉아 있는 형태다. 누구나 소녀상 옆에 같이 앉아 따스한 온기를 전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단발머리가 아니라 머리 뒤로 길게 땋아 하나로 늘어뜨린 모습도 차별화 돼 있다. 손에 들고 있는 꽃 역시 서리 찬 가을에도 피는 국화로 제작됐다. 재능기부로 평화의 소녀상 제작에 참여한 조각가 서용준씨는 "국화는 어떤 역경에도 변하지 않는 기상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경기 광주 ‘나눔의 집’ 내에 지난 18일 개관한 ‘유품전시관과 추모기록관’내 유품전시관에서 만난 이용수 할머니. 전익진 기자

경기 광주 ‘나눔의 집’ 내에 지난 18일 개관한 ‘유품전시관과 추모기록관’내 유품전시관에서 만난 이용수 할머니. 전익진 기자

총학생회는 모금으로 1500여만 원을 모았다. 하지만 제작비로는 부족했다. 이때 학생들의 평화의 소녀상 건립 활동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은 조각가(서용준씨)와 주물공장 사장(조형미술주조 유광선 대표)이 재능기부와 후원자로 돕겠다고 나섰다. 총학생회는 제막식에서  서 작가와 유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대구대는 해외 강제징용으로 희생된 동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이판에서 추모행사를 연다. [대구대 제공=연합뉴스]

대구대는 해외 강제징용으로 희생된 동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이판에서 추모행사를 연다. [대구대 제공=연합뉴스]

이렇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나서게 된 사연은 지난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학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은 사이판 북쪽 마피산을 찾았다. 마피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마피산 중턱 태평양 한국인 위령평화탑공원에는 해외희생 동포를 기리는 추모비가 있다. 대구대는 개교 60주년을 맞아 지난해 설립자인 고(故) 이영식 목사의 민족애를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

경북 영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제작한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경북 영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제작한 평화의 소녀상. [연합뉴스]

이곳을 찾은 학생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강제로 징용되어 희생되신 동포들을 추모하고….'라는 글이 쓰인 추모비(가로·세로 2m)를 견학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 수차례 투옥된 독립운동가인 이 목사는 1975년 괌을 찾았다가 한국 교포로부터 일본 징용으로 끌려와 희생된 5000여 명의 한국인 유해가 있다고 전해 들었다. 사이판과 티니안 정글에 방치돼 있다는 것이었다.

티니안은 사이판에서 남쪽으로 5㎞ 떨어진 이웃 섬이다. 이들 섬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이 섬을 탈환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곳이다. 정글에 방치된 한국인 유해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이 목사는 뜻이 있는 학자들과 2년여 사이판과 티니안 정글을 조사했다.

티니안 정글 일본인 묘지 부근에서 '조선인지묘(朝鮮人之墓)'라는 비석을 찾아냈다. 무덤 3기도 인근에서 발견했다. 이렇게 2년간 이 목사 등은 수천 구의 한국인 유해를 정글에서 발굴했다. 그러곤 봉환해 해외 동포의 안식을 위해 건립된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했다.

대구대는 산학협력을 인문사회계열까지 확장해 총 94개 학과 전체가 프로젝트·현장실습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중앙포토]

대구대는 산학협력을 인문사회계열까지 확장해 총 94개 학과 전체가 프로젝트·현장실습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중앙포토]

홍덕률(60) 대구대 총장은 "이 목사는 1981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지만 그가 남긴 인류애·민족애 정신을 기려 추모비를 사이판 현지에 세우고, 매년 대학과 재단에서 사이판을 찾아가 추념행사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직접 보고 알게 된 김준형 대구대 총대의원회 의장(23·부동산학과 4년)은 "사이판에서 희생된 동포 이야기를 듣는 내내 울분을 느꼈고, 이런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총학생회·총대의원회 등 학생자치기구 학생들 중심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김선휘 대구대 총학생회장은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그동안 우리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자 역사적으로 잘못된 일에 대해 잊지 말자는 다짐이다"고 말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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