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없이 상어 밥되는 줄 알았다"-스타킴호 선장 생환기 장옥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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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충승=최철주 특파원】72시간의 표류 끝에 소련화물선에 의해 구출된 스타킴호의 선장 장옥상씨 등 선원14명 전원이 23일 오후 오키나와(충승)의 나하(나패)시에 건강한 모습으로 도착, 귀국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다음은 72시간의 표류 끝에 소련화물선에 구조되기까지의 경위를 회상한 장 선장의 생환기다.
사신이 손짓하는 사흘간의 표류동안 4척의 외국선박이 우리들의 구명보트를 그냥 지나쳤다. 못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바시 해역에서 우리들을 귀찮은 존재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다섯번째로 나타난 건 소련선박. 바로 그들이 우리 생명의 은인이었다.
소련 선원들은 팬티와 러닝셔츠를 나눠주고 피부병을 치료해주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하늘의 도우심이겠지만 이 무슨 기묘한 연분인가.
우리가 탄 스타킴호가 침몰한 것은 19일 오전1시5분. 오키나와 남서쪽 3백80마일 해상이었다. 모두가 새벽녘까지 선실에서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집채만한 삼각 파도의 공격 일격을 받고 순식간에 배가 45도로 기울어졌다. 선체를 회복시키기 어렵다고 판단되자 30분 후에 선원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렸다. 자동 에어장치로 바다에 띄운 구명보트에 3일분의 비상식량, 1주일 분의 식수를 실었다.
폭풍우가 하루 이상이나 계속된 후 바람이 잔잔해지자 일본비행기가 3천여m 상공을 지나갔다. 재빨리 신호탄 1발을 발사했으나 비행기에 발견되기에는 너무 늦었다.
15인승 구명보트에 14명 전원이 쭈그리고 앉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때때로 쥐가 나 안절부절못하는 선원들도 있었다. 이러다가는 우리들이 구조되는데 2주일 이상이 걸릴지도 몰라 한끼 분의 비상식량(건빵)으로 하루를 때웠다.
21일 아침 멀리 배 1척이 지나갔으나 소리쳐 부를 힘도 없었다. 그때 조그마한 무인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들은 비상식량을 담은 비닐부대를 노에 매달아 돛으로 사용, 섬으로의 접근을 시도했다. 그러나 역풍이 불어 이마저 허사로 끝났다. 모두 기진맥진했다. 이날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자 희끄무레하게 배 1척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1시간 반 후에 다시 1척, 또 1척이 스쳐갔다. 우리들은 회중전등의 불빛을 흔들며 몸부림쳤다. 추위와 허기가 우리를 엄습했다. 또 인근해역은 상어 떼의 서식지라 우리는 상어 공격의 공포에 떨어야했다.
밤11시40분쯤 커다란 선체가 나타났다. 드디어 반응이 나타났다. 우리들의 회중전등 불빛에 이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선박의 서치라이트가 꺼졌다 켜졌다 했다.
『야, 우리를 구조하러 왔나보다』고 누군가 소리쳤다. 우리는 구명보트를 30여분이나 저어 그 선박에 접근했다.
덩치 큰 10여명의 선원들이 몰려들어 우리들을 그들의 갑판으로 끌어 올렸다. 우리들은 그 배가 미국선적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갑판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7천t급 소련상선이었다.
그들은 우리들의 국적과 선명·콜사인·선주·침몰사고현황·출항·귀항예정지 등을 소상히 묻고는 이를 본국에 통보하는 듯 했다. 소련상선에 있던 선의는 우리들 14명을 전원 진단하고는 오한을 느끼고 있는 일부 선원들에게 두통약을 주고 피부병치료에 나섰다. 다른 소련선원들은 그들이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내의류를 가져와 물에 흠뻑 젖은 우리들의 옷을 바꾸어 입도록 했다.
22일 아침 나는 소련선장에게 한국으로 전신을 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는 쾌히 승낙했다. 우리 선원들이 아침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자 소련인 들은 방마다 문을 두드리며 식사를 하라고 손을 입에 가져가 먹는 시늉을 했다. 35명의 소련선원들 가운데 영어회화가 가능한 사람은 매우 적었다. 그 배에는 선원 간부들의 부인과 조리사 등 5명의 여자들도 타고 있었다.
식사는 꺼칠꺼칠한 옥수수 빵과 야채·감자를 으깬 수프 등이었으며 우유나 술은 없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그들의 후대는 잊을 수가 없다. 우리들이 스타킴호를 퇴선 하기 전 SOS를 치면서 한국인임을 밝혔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국적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그들의 귀항지를 물으니『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항으로 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들의 배려로 우리들은 오키나와 나하의 외항까지 갈 수 있었다.
나는 소련선박에 비치되어있는 비망록에『우리를 구조해주고 친절히 대해주어 대단히 고맙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하고 영문으로 적었다. 우리들은 일본 배로 옮겨 타면서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소련의 한 선원은『우리들이 당신들을 구조해 준 것은 우정의 표시오』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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