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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미국서 추방당했던 찰리 채플린, 융프라우에 우뚝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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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스위스에 찰리 채플린 얼음동상 제막

스위스 융프라우요흐 얼음궁전에서 지난 7일 열린 찰리 채플린 얼음동상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얼음동상 바로 왼쪽 중절모를 쓴 사람이 채플린의 아들 유진 채플린, 오른쪽은 조각가 존 더블베이.

스위스 융프라우요흐 얼음궁전에서 지난 7일 열린 찰리 채플린 얼음동상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얼음동상 바로 왼쪽 중절모를 쓴 사람이 채플린의 아들 유진 채플린, 오른쪽은 조각가 존 더블베이.

올해 크리스마스는 찰리 채플린이 세상을 떠난 지 꼭 40년 되는 날이다. 그의 40주기를 맞아 스위스가 요즘 떠들썩하다. 스위스가 채플린에게 푹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무슨 까닭일까.

스위스와 찰리 채플린의 인연 #공산주의자로 몰려 유럽 떠돌다 #브베에 자리잡고 행복한 노후 보내 #살던 집은 박물관·테마파크로 #제네바 인근 호수에 3층짜리 저택 #‘키드’ ‘모던 타임스’ 세트장 만들어 #불의에 맞섰던 배우·감독의 삶 #어린 시절 혹독한 가난으로 고통 #소외된 이들 편에서 부·권력 풍자

채플린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배우이자 감독, 음악가로 명성을 날리다 공산주의자로 몰려 1952년 추방당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채플린의 사상을 의심해 외유 중이던 그의 입국을 금지시켰다. 채플린은 그 뒤 유럽을 떠돌다 스위스에 자리를 잡아 77년 12월 25일 사망할 때까지 25년간 살았다. 그의 88년 생애 중 약 3분의 1을 스위스에서 보낸 셈이다.

스위스 브베에서 노년을 보낼 때의 찰리 채플린. [사진 융프라우철도]

스위스 브베에서 노년을 보낼 때의 찰리 채플린. [사진 융프라우철도]

채플린은 스위스 브베에서 36세 연하의 부인 우나 채플린과 8명의 자녀를 키우며 행복한 노후를 보냈다.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채플린은 19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영주권을 얻었지만 영국 국적을 유지했다.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위스 사람들은 채플린을 ‘자랑스러운 스위스 사람’으로 여긴다.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채플린 40주기를 기리는 행사나 사업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유독 스위스는 열심이다.

◆융프라우요흐에 채플린 얼음동상=스위스 하면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융프라우. ‘유럽의 정상’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채플린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스위스는 융프라우요흐(해발 3454m)의 관광 명소인 얼음궁전 안에 채플린 얼음동상을 만들고 지난 7일 제막식을 했다. 융프라우철도(주)와 채플린월드 뮤지엄이 손을 잡고 제작한 채플린 얼음동상은 빙하 속 얼음궁전에 영구적으로 자리 잡아 관광객들을 맞게 된다.

얼음동상은 채플린이 한 아이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다. 채플린의 첫 장편영화 ‘키드(The Kid·1921년 개봉)’의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채플린은 중절모와 콧수염, 헐렁한 바지에 낡은 구두를 신고 지팡이를 든 떠돌이 부랑자 모습으로 등장해 버려진 아이를 거둬 돌본다. 영화 ‘키드’ 이후 콧수염의 왜소한 부랑자(Little Tramp) 모습은 채플린의 캐릭터로 자리 잡는다. 부랑자 캐릭터의 주인공은 채플린의 그 뒤 영화들에서 시종일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는 인간적 장면을 보여 준다.

채플린 40주기를 맞아 제작 된 열기구 풍선. [사진 융프라우철도]

채플린 40주기를 맞아 제작 된 열기구 풍선. [사진 융프라우철도]

이날 얼음동상 제막식에는 어린이 40여 명이 중절모와 콧수염의 채플린 분장을 하고 등장해 웃고 뛰어다니며 흥을 돋웠다. 제막식에 참석한 채플린의 아들 유진 채플린은 “아버지는 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 때문인지 항상 어린이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따뜻한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한 “아버지는 스위스의 아름다운 산과 호수, 특히 눈 덮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사랑했다”고 전했다.

스위스 관광 당국과 융프라우철도는 채플린 효과 덕분에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융프라우철도의 최고경영자(CEO)인 우르스 케슬러는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에서만 한 해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스위스를 찾는다”며 “아시아 사람들이 스위스와 채플린의 인연을 알게 되면 스위스를 더욱 친근 한 곳으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플린이 노년을 보낸 저택. [사진 융프라우철도]

채플린이 노년을 보낸 저택. [사진 융프라우철도]

◆박물관·테마파크 된 그의 저택=채플린이 스위스에서 25년간 살았던 집은 제네바 인근 레만 호숫가의 브베에 있다. 브베는 세계적 식품기업인 네슬레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구릉과 와이너리, 멀리 알프스 산맥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채플린의 저택도 호수가 보이는 언덕 위에 과거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3층짜리 본관과 차고지를 합한 건평 약 3000㎡에 정원이 5000㎡를 넘는다.

채플린의 집은 지난해 4월 ‘채플린월드 뮤지엄’으로 단장해 일반인에게 문을 열었다. 본관 저택은 거실과 식당, 도서관, 화장실 등 과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가운데 채플린과 그의 부인 우나의 밀랍 인형이 관광객들을 반갑게 맞는다. 벽면에는 채플린의 생애 및 작품에 대한 설명과 영상으로 장식돼 집을 구경하다 보면 저절로 채플린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채플린월드 스튜디오의 ‘모던 타임스’ 세트장. [사진 융프라우철도]

채플린월드 스튜디오의 ‘모던 타임스’ 세트장. [사진 융프라우철도]

차고지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스튜디오 테마파크로 개조됐다. 스튜디오 1층의 영화관에서 10분짜리로 제작된 채플린의 영화 역사를 관람한 뒤 지하로 내려가면 거대한 스튜디오가 등장한다. 여기에는 ‘모던 타임스’ ‘키드’ ‘위대한 독재자’ ‘시티 라이트’ ‘황금광 시대’ ‘전당포’ ‘라임라이트’ 등 채플린의 대작들을 세트장과 밀랍 인형으로 재현하고, 관련 영화 장면들을 오버랩시킨다. 관광객들은 세트장 안으로 들어가 자기도 영화 속 인물인 양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건물 밖으로 나와 채플린의 정원을 거니는 것도 흥미롭다. 100년 넘은 거목들이 즐비한 가운데 곳곳에 채플린이 과거 바로 그 자리에서 가족과 단란하게 생활했던 사진들이 걸려 있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채플린의 40주기를 기념해 거대한 열기구 풍선이 정원에 등장한다. 채플린 캐릭터가 그려진 핑크빛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오르면 멀리 레만 호수와 알프스의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채플린월드 뮤지엄 측은 “앞으로 매년 3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채플린을 만나러 이곳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플린 삶과 작품의 재조명=채플린은 어린 시절 불우한 가정환경과 혹독한 가난으로 고통받았다. 10세가 되기 전에 보육원을 두 차례 가야 했다. 하지만 역경에 맞선 불굴의 의지는 그의 삶을 희극배우로 반전시켰다. 부랑자 캐릭터는 그의 자화상이나 다름없었다. 가난한 떠돌이는 항상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불의에 맞섰다.

‘모던 타임스’에서 그는 2차 산업혁명 시대 기계문명 아래서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코믹하면서도 눈물겹게 그려 냈다. 아돌프 히틀러를 희화화한 ‘위대한 독재자’를 통해선 세계 평화와 인권의 의미를 일깨우기도 했다. 그러나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그는 눈엣가시였고 결국 공산주의자로 내몰았다.

오늘날 세계화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다시 심해지는 양극화와 불평등은 채플린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튜브에서 모던 타임스와 위대한 독재자의 명장면·명대사는 수천만 건의 조회를 기록 중이다. 스위스는 그런 사람들에게 “여기 와서 채플린을 만나 보라”고 손짓한다.

[S BOX] 컵라면 먹고 철도 무제한 이용 … 요긴한 ‘융프라우 VIP패스’

융프라우철도

융프라우철도

융프라우를 편하게 즐기려면 융프라우철도(사진)의 ‘VIP패스’가 좋다. 패스의 유효기간 안에 융프라우의 모든 관광지와 마을을 무제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요흐는 물론 피르스트, 슈니게 플라테, 하르더 쿨름, 뮈렌, 만리헨 등에 오를 수 있다. 각종 액티비티의 무료 이용 또는 장비 할인 혜택도 주어진다. VIP패스 가격은 성인의 경우 1~6일 170~270스위스프랑이며, 청소년과 어린이는 할인 혜택을 받는다.

내년부터는 같은 패스로 인터라켄과 그린델발트의 마을버스와 그린델발트 및 벵엔 산간 마을의 스포츠센터도 무료 이용할 수 있다. 융프라우요흐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는 바우처도 끼워 준다. 겨울 여행객에게는 40개가 넘는 스키 리프트와 200㎞ 이상의 슬로프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스포츠패스(리프트권)가 제공된다. 스키를 못 타는 사람들은 눈썰매와 플라이어, 글라이더 등을 역시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융프라우철도 한국총판인 동신항운의 송진 이사는 “동신항운이 무료 제공하는 할인쿠폰(철도예약 바우처)을 한국에서 받아가 스위스 현지 역에서 보여 주면 VIP패스를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브베·융프라우=김광기 기자 kikw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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