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에 정치생명 건 한판승부|김영삼씨의 김대중 총재와 회동제의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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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산중에서 칩거하고 있던 민주당의 김영삼 전 총재가 22일 갑자기 상경,△민주당의 선 소선거구제 당론 변경△김대중 평민당 총재와의 회동 제의△신당창당작업 중단 호소 등의 카드를 던지고 두 김씨 회동이 전격적으로 이뤄짐으로써 야권은 다시「통합」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뵀다.
김 전 총재의 이같은 전격적 제의는 자신의 총재직 사퇴로 김대중씨와 평민당 측을 코너로 모는데는 성공했고 「여론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긴 했으나 통합협상이 결국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극약처방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부분통합도 공천보장 문제가 걸려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자신의 사퇴이후 일치 단결된 당 운영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민정당이 소선거구제를 카드로 야권을 「농락」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모종의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김 전 총재는 △평민당이 소선거구제 관철을 외해 당사에서 농성까지 하고△총재직 사퇴의 효과가 무위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국면에 처하게 되자 정치의 전면에 컴백, 정치생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기 위해 이같은 제의를 한 것이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김영삼씨 쪽에서 통합의 장애조건이던 소선거구제로 당론변경을 선행한다고 까지 후퇴함으로써 김대중 총재로서도 이것을 거부할 도리가 없어 두 김씨 회동이 이뤄지긴 했다.
일부에서는 두 김씨가 고문·총재직을 맡고 50대50으로 지분을 나눠 갖는 식으로 재통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물론 어느 한쪽이 다소는 양보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두 김씨가 조금이라도 양보해 가면서 과연 통합을 이룩하고 야권재건에 나설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지금까지 몇 번 야당통합이라는 문제가 나왔으나 결국 결렬되고만 것은 두 김씨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통합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영삼씨 측이 총재직 사퇴라는 카드를 던졌을 때 염두에 둔 것은 민주당 주도아래 평민 당과의 당대 당 통합을 포함한 완전통합을 겨냥한 것이고 그것이 안되더라도 민주당중심의 부분통합을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결렬된 것은 이런 의도를 간파한 김대중 총재 쪽에서 소선거구제와 재야를 포함한 「3자 대 통합」이라는 두 가지 명분을 내세워 딴 죽을 걸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총재가 쏟아지는 여론의 비판을 감내 해 가면서 끝까지 버틴 것도 야권통합 전망이 비관적이라는 점과 결국 시간을 벌면 김영삼씨의 속셈이 튀어나올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실상 시간이 지나면서 김영삼씨가 떠나 버린 민주당 쪽은 민정당과의 선거법협상을 서두르고 1구1∼3인 제안을 수용함으로써 소선거구제를 주장하는 김대중 총재의 견제에 걸리고 말았다.
앞으로 김영삼씨가 다시 야당통합을 걸고 나온 것이 어느 정도의 진심이며, 어디까지 밀고 갈 작정인 가에 따라 야권통합의 방향이 결판나게 된다.
비록 소선거구제라는 장애물을 벗어 던지기는 했지만 어느 일방이 결정적으로 양보해야 하는 통합이라면 두 김씨 모두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통합을 바라는 여론 때문에 다시 두 김씨가 만나는 모습을 보이는 등의 정치적 제스처를 쓰더라도 내막 적으로 통합에 따른 까다로운 조건들을 내걸고 통합을 지연시킬 수 있다.
평민당이 김영삼씨의 두 김 회동 제의에 대해 환영하면서도「재야를 포함한 통합」을 다시 꺼낸 것을 보면 재야라는 조건을 이용할 의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두 김씨 중 어느 쪽이 총재·고문을 맡느냐는 역할분담 문제도 선뜻 해결하기엔 까다로운 문제다.
일단 야권통합문제에서 기선을 제압한 김영삼씨는 계속 통합의 카드를 밀고 나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제1당의 위치확보, 선거법협상의 유리한 고지 선 점 등 복합적인 정치계산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김영삼씨가 지난 15일간의 「계산된 정치휴면」을 훌훌 털고 정치 전면에 복귀한 배경에는 야권통합이 안될 경우의대비책도 충분히 구상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평민당 측이 통합에 까다로운 선행조건을 계속 고집할 경우 김 전 총재는 차선책으로△동요하는 당의 결속을 도모하는 한편△무소속의원·재야신당과의 일부영입 및 평민당 일부의원의 입당유도 등을 통해 민주당중심의 실질적 야권통합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야권통합에 대한 김대중 총재의 대응수단이 흥미 있는 관심거리다.
만약 두 김씨가 통합이라는 명분에 몰리다 보면 그들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의 결론이 날수도 있다.
아무든 두 김씨가 야권통합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야권의 모습뿐 아니라 전체 정국상황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정국은 당분간 야권통합을 축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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