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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잃은 친구 위해 달리는 '비정상' 스타 제임스 후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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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보라매공원에서 11일 제임스 후퍼가 자신의 자전거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11일 제임스 후퍼가 자신의 자전거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후퍼(30)와 동갑내기 친구 롭 건틀렛은 15년 전에 3박4일 자전거 여행길에 약속했다. 에베레스트산에 함께 가기로 했다. 후퍼는 "미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4년 뒤 후퍼와 건틀렛은 에베레스트에 오른 영국 최연소 등반가가 됐다. 이후 후퍼가 하는 모든 탐험의 여정에 건틀렛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2009년 함께 간 프랑스 알프스 등반에서 건틀렛, 그리고 또 다른 친구 제임스 앳킨슨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후퍼는 한동안 탐험을 중단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다. 그러면서 친구들을 기리는 '특별한 모험'도 진행했다. 꼬박 8년째다. 모험명은 '원 마일 클로저'(One Mile Closer, '1마일 더 가까이'의 의미)다. 매년 유럽과 한국 등지를 자전거·보트·도보 등 무동력으로 종단하며 모금하는 기부 캠페인이다.

친형제처럼 붙어 다녔던 제임스 후퍼(왼쪽)와 롭 건틀렛. 롭은 2009년 알프스 등반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 원 마일 클로저]

친형제처럼 붙어 다녔던 제임스 후퍼(왼쪽)와 롭 건틀렛. 롭은 2009년 알프스 등반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 원 마일 클로저]

매년 유럽과 한국 등지를 무동력으로 종단하며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원 마일 클로저' 참가자들. [사진 원 마일 클로저]

매년 유럽과 한국 등지를 무동력으로 종단하며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원 마일 클로저' 참가자들. [사진 원 마일 클로저]

올해 원 마일 클로저 캠페인은 한국에서 열렸다. 지난 9월 10일 후퍼는 30명의 국내외 참가자들을 모아 낙동강에서 서울 남산까지 6박7일 간 자전거를 탔다. 11일 서울 동작구의 한 사무실에서 후퍼를 만났다. 이번 라이딩의 총감독으로 후퍼와 함께 한 그의 친구 박세훈(38)씨 사무실이었다. 후퍼는 "출발 전 날에 비가 쏟아져 빗물이 무릎까지 차올랐다"며 그날 찍은 영상을 보여줬다. 그는 매번 '모험'이 주는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 속에서 비로소 '사는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첫 날부터 고생길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완주를 마무리했다. 목표 모금액 1500만원이 다 모였다. 모금액 중 절반은 후퍼가 이 활동으로 2011년 아프리카 우간다에 세운 학교로, 나머지 절반은 푸르메재단의 국내 최초 장애어린이 재활전문 병원인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전달됐다. 원 마일 클로저가 국내 공익재단에 모금액을 기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후퍼는 "어린이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내가 탐험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어렸을 때 자전거·클라이밍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제임스 후퍼가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한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제임스 후퍼가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한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후퍼는 2010년에 처음 한국에 와 경희대 지리학과에 입학했다. 영국 런던에서의 생활이 너무 지겨워져 내린 결정이었다. '많은 나라 중 왜 하필 한국이었냐'는 질문에 후퍼는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찰나 한국에서 3년 정도 생활한 지인이 종종 들려준 한국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영국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 다른 언어의 나라라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답했다. 탐험가 정신의 발동이었다. 그의 '한국 탐험'은 성공적이었다. 후퍼는 학교 등산 동아리에서 부인 이정민(30)씨를 만났다.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JTBC 인기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유명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은 내 삶의 중심이 됐다. 특히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은 지하철만 타고 내리면 바로 등산을 떠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고 말했다.

후퍼는 자신을 탐험가이자 동기부여가(Motivation speaker)라고 소개한다. 동기부여가로서 강연에 나설 때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제안한다고 했다. "'마라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들은 보통 못할 이유들을 만들어요. '바깥이 너무 추워' '시간이 없어' 등…. 이젠 '마라톤을 하려면 뭐부터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세요. '5㎞ 달리기를 해보자' '매일 운동장 한 바퀴를 돌자' 이런 것들 말이에요. 저 역시 처음 에베레스트 등반을 목표로 정하고 바로 실천한 게 아니에요. 클라이밍 동아리에 가입해 실내 클라이밍장에서 암벽타는 연습부터 했죠."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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