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 보여줄 인물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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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 정부의 조각작업이 거의 끝나 곧 인선발표가 나을 모양이다. 이번 조각작업은 몇 가지 면에서 과거와는 스타일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우선 임면권자가 제청권자인 총리내정자와 연일 인선을 협의하는 모습이 보이고 일부 각료 내정자의 이름이 미리 새나오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과정으로 임명되는 지도 모르게 밀실에서 이뤄지던 과거방식보다는 확실히 참신한 맛이 있다.
그러나 인선내용까지 참신할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실제 사람을 고르는 일은 힘들 수밖에 없다. 결국 아는 사람 중에서, 범위를 넓혀봐야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중에서 고를 수밖에 없고, 그런 중에 참신미도 고려해야하고 능력도 따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임면권자의 고층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이런 인선의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새 내각은 시대가 바꿔는 흐름을 반영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 갈등에서 화합으로, 독정에서 공존으로 간다는 것이 노 당선자의 공약이자새시대의 방향인 이상 조각에서도 이런 의지가 보여야할 것이다. 그러자면 구시대의 권위주의적, 갈등조장적, 독정적 권력운용의 관계자나 참여자는 당연히 배제돼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또는 대폭적인 인물교체가 불가피할 것이다.
일부 전문분야의 국정계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분적인 유임필요성은 인정된다 하더라도 꼭 장관이 유임돼야 그 분야의 계속성이 유지되는 것은 아닌 만큼 이는 최소한에 그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새 정부는 현 정부와 같은 세력이고 같은 정당 내부의 권력승계라는 점에서 인물구성의 문제는 공약실천의지의 첫 시험대라고도 할 수 있다.
5공화국과는 다른 6공화국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인물구성에서 보여줘야 한다. 새 정부로서는 힘들었던 지난 선거에서 혹시 신세를 졌을 수도 있고 아는 범위 안에서 더 나은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상당수의 인맥잔존 독으로 기울어질는지도 모르나 시대가 바뀌면 사람도 바뀌는 것이 옳다.
우리로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을 기용하라고 제시하긴 어렵지만, 지금껏 정부의 권위주의적 성격과 정통성시비 때문에 참여를 꺼려온 사람, 권력과는 늘 일정한 거리를 두어온 사람, 혹은 나아가 권위주의적 권력을 용기 있게 비판한사람을 새 정부가 일부라도 포함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새 정부가 탈권위주의적 민주화의 길을 간다는 확실한 신뢰를 국민이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하에서 순치된 관료적 우수성에 인선의 중점을 두지 말기를 바라고자 한다. 지난 20여년간 말 잘 듣고, 머리 좋고, 눈치 빠른 우수한 관료형이 대거 반상했지만 이들이 권력만 쳐다본 채 하는 일의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고 대국적 균형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생긴 폐단이 얼마나 큰가.
하나를 말하면 미루어 열을 시행하는 「알아서 기는」 식의 풍토가 조성되어 의도하든 않든 고위층의 호악나 성향이 그대로 정책방향으로 굳어지고 정부안에서 창의니 소신이니 하는 것은 존립할 여지가 없어 졌던 것이다. 관료적 우수성은 떨어지더라도 주견을 가지고 늘 대국적으로 보려는 사람이 정부 내에 다수 있어야 건전한 결정이 나을 수 있고 결정적인 실수를 막을 수 있다.
과거 정부 내 그 많은 우수한 사람이 있었는데도 야당당사 봉쇄니, 고문사건이니 하는 치명적 패착이 왜 나왔는가를 생각하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밖에 새 정부의 인물구성에서는 역대정권의 지역적 편향성을 점진적으로 상쇄해 나갈 수 있는 적절한 지역안배의 고려도 있어야 할 것으로 보며 이런 몇 가지 배려가 조각의 최종단계에서라도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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