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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신자 구미에 맞는 말만 … 믿음 없는 성공 팔아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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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호 14면

종교개혁 500주년, 한국 교회의 갈 길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상징문 앞에 선 송길원 목사. 문에는 종교개혁가들의 초상이 목판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김경빈 기자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상징문 앞에 선 송길원 목사. 문에는 종교개혁가들의 초상이 목판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김경빈 기자

종교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9월의 성경’으로 불리는 루터의 성경(1862년 판).

종교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9월의 성경’으로 불리는 루터의 성경(1862년 판).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는 혼란의 시대였다. 교황의 추문이 끊이지 않았고, 면죄부 판매 같은 부정부패도 만연했다. 루터는 오직 성경을 바탕으로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루터는 교황의 압박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종교개혁은 사회개혁으로 번져 나갔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당시와 얼마나 다른가. 교회 수는 7만 개를 넘었지만 신자들은 조금씩 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다. 교회 세습이나 신축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그 가운데 한국 교회의 오늘을 반성하고, 종교개혁 당시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정사역단체인 하이패밀리의 대표이자, 종교개혁500주년 기념교회의 담임목사인 송길원(60) 목사에게 한국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지난달 28일 오후 3시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산길을 따라 자동차로 10여 분간 들어서자 산 중턱쯤에 자그마한 캠퍼스 같은 공간이 나왔다. 너른 주차장 옆으로 두 동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하나는 순백색이고, 다른 하나는 푸른색 계란 모양이다. 두 건물 모두 교회라고 했다. 계란을 닮은 건물은 연면적 19.83㎡의 ‘청란(靑卵)교회’다. 주로 가족 단위의 예배객을 위한 공간이다. 청란교회 뒤편 하얀 건물은 올 4월 설립된 ‘종교개혁500주년 기념교회’(이하 기념교회)다. 담임목사는 오랜 세월 가정사역에 주력해 온 송길원 목사다. 송 목사는 교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른 목회자들과 달리 1992년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를 시작으로 가족에 기반한 신앙 공동체 구축을 강조해 왔다. 그는 스스로를 ‘사고뭉치’라고 부른다. 다양한 사고(thinking)를 한다는 의미에서다.

가정사역 주도 송길원 목사 #부 절대시하는 맘모니즘에 빠져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게 아니라 #출세한 사람 헌금을 축복이라 여겨 #신자들은 성경을 삶에 적용 안 해 #집사네 권사네 직분 정하는 것도 #선행을 기준으로 하는 건 드물어 #목사 개인의 것이 아닌 교회 #아들 세습은 신앙 부정하는 것

종교개혁500주년 기념교회 내의 성찬과 세례가 행해지는 곳(왼쪽)과 천국으로 가는 계단. 김경빈 기자

종교개혁500주년 기념교회 내의 성찬과 세례가 행해지는 곳(왼쪽)과 천국으로 가는 계단. 김경빈 기자

신자는 교회 외면, 설교는 교양강좌 수준

기념교회는 일반적인 교회와 다른 느낌이다.
“이름 그대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교회다. 콘셉트는 ‘교회다운 교회’다. 너무 요란하고 화려해 교회답지 않은 교회 대신 소박하지만 믿음으로 충만한 진짜 교회를 짓는 데 주력했다. 교회 안에는 4.5m짜리 대형 십자가를 세웠다. 다른 무엇보다 십자가에 집중하자는 뜻에서였다.”

기념교회는 송 목사의 모교인 고신대 신학대학원 동기들의 지원으로 건립됐다. 그의 말대로 교회 2층 예배실 정면 중앙에 있는 4.5m 높이의 대형 십자가가 유독 눈에 띄었다. 여러 개의 선을 덧대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십자가 안에는 ‘익투스’라 불리는 물고기 문양이 보였다. 익투스는 로마 제국 시절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비밀 부호로, 기독교 또는 기독교인의 상징으로 쓰였다.

흔히 한국 교회의 위기라고 한다.
“교회 숫자가 7만여 개를 헤아린다고 한다. 하지만 신자는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목사님들의 설교는 교양 강좌 주순으로 떨어졌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려 하지 않고, 신자들의 구미에 맞는 말만 하려고 한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편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개신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종교개혁의 정신이 잊혔다’는 회의감이 깊이 든다.”
종교개혁의 요체는 뭔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게 근본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교회에 믿음은 온데간데없다. 성공을 파는 데 주력한다. 한마디로 맘모니즘(mammonism, 부·재산 등을 절대시하거나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에 빠져 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이 많은 헌금을 하고, 그걸 통해서 축복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건 구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돼 있다. 근본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 교회는 원래 기복 성향이 강하다. 교회의 세속화는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초기에 기독교가 전래될 때 당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면서 연착륙하다 보니 그런 점이 다소 있다. 어느 종교든 현지 문화라는 옷을 입는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주의해야 할 점은 ‘문화 이해’란 경계를 넘어 세속화 자체를 추구하게 되는 현상이다. 그런 건 결국 본질과 비본질이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국내 대형 교회가 세습 논쟁에 휩싸였다.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반대로 누군가의 혈통이기 때문에 무임승차시키는 것도 옳지 않다. 그렇다면 공정하게 평가하고 후계자를 세우는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교회는 목사 개인의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것이다. ‘내 아들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라는 생각은 결국 신앙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라면 누구를 목회자로 세우든 이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성경의 말씀이다. 차라리 ‘경쟁했더니 실력이 월등하더라.’ 이랬으면 지금 같은 논란은 없을 것이다.”

‘비타민A 결핍 교회’, 적용 없는 현실 말해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어떤가.
“외국인 신학자 한 분이 ‘한국 교회는 비타민A 결핍’이라고 진단하신 일이 있다. 비타민A 결핍이란 결국 적용(Application)이 없는 오늘의 현실을 말한다. 많은 신자가 성경 내용을 알기만 할 뿐 자신의 삶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속된 말로 머리만 커진 신자가 많다. 집사네, 권사네 하는 교회 내 직분을 정하는 일조차 ‘성경을 읽었느냐, 주차 봉사를 하느냐’ 등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평소 삶에서 얼마나 선한 영향을 끼쳤느냐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성경 말씀대로 ‘집에서 구타하지 아니하며, 일구이언하지 아니하며’ 등을 기준으로 하면 어떨까. 신도 중 권사나 집사 같은 직분자를 세울 때에도 그 후보자의 평소 생활이 성경의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위기에서 빠져나올 대안은 뭔가.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라는 종교개혁 3대 정신을 새겨야 한다. 그리고 주기도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기도문은 단순한 기도문이 아니라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가르쳐주는 가르침이다. 주기도문으로 돌아가자는 건 결국 세속의 잣대를 벗어나, 기본을 다하는 인간이 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표현 중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구절(데살로니가전서 5장16~18절)이 있다. 하지만 바로 앞 15절에 ‘항상 선을 따르라’는 구절도 있다. 기도하고 감사하는 일에는 밝지만, 선한 일을 행하는 데에는 약하다.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선한 일은 수도 없이 많다. 누구나 선한 마음을 쏟아서 살기만 하면 세상이 금방 천국으로 변할 텐데. 설령 교리를 몰라도, 행실을 통해 ‘저런 게 예수쟁이구나’하고 보여줄 수 있다. 그 기본이 되는 내용이 바로 주기도문이다.”

송 목사는 기념교회 뒤편 야산에 주기도문을 테마로 한 순례길인 ‘주기도문 영성의 길’을 만들었다. 산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레 주기도문의 의미를 몸으로 배우란 뜻에서다. 직접 체험하며 배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이라는 믿음도 작용했다. 길은 총 2.1㎞로 성인 걸음으로 3000보 정도다. 길 양쪽에는 도자기 1000개로 만든 십자가와 타일로 만든 밀레의 ‘만종’ 등 다양한 예술품이 설치돼 있다. 현재까지 5만2000명이 넘는 신자가 이곳을 다녀갔다. 여기에 그는 인터뷰 내내 가족의 가치를 강조했다.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 단위인 가족부터 건강해야 건강한 교회는 물론 건강한 사회가 가능할 것이란 믿음에서다.

가족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한 방식이다. 미국은 이미 생애 단계별로 신자들과 함께하는 단계별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한국 교회는 어떤가. 부모가 성가대 연습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다른 곳에 앉아서 게임이나 하며 부모를 기다려야 한다. 가족 모두가 함께 교회에서 활동하고 교회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인적 자원이 충분하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나. 교회는 든든한 마을이 되어줄 수 있다. 또 교회는 치유의 기능을 갖고 있다. 중증외상센터가 부서진 몸을 치료하는 곳이라면, 교회는 부서진 마음을 돌보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성범죄 등으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여성을 위한 치료센터를 세우는 일도 추진 중이다.”
스스로를 어떤 목회자라고 생각하나.
“목사가 되려고 몸부림을 쳤던 목사가 아닐까. 아직은 목사가 못 된 것 같다. 그게 아니라 ‘못이 된 목사’가 아닐까. 예수님도 못에 박히셨고…. 개인적으로는 가족들에게 성경의 기준으로 봐도 멋있는 아빠와 남편으로 기억되고 싶다. 내 사역의 완성은 결국 가정이다.”

양평=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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