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 붙은 문인-이호철<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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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조금 엉뚱하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문화란 무엇이며, 문화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한번쯤 근원적으로 물음을 던져야할 때인 것 같다. 어디까지가 문화이고 어디서부터가 문화가 아닌지, 또 어떤 사람까지가 문화인이고 어떤 사람부터가 문화인이 아닌지도 통 분간이 안되는 시대에 우리는 바야흐로 들어서 있다.
가령 해마다 파리로 건너가서 의상전시회를 여는 디자이너와 국내에서 소정절차를 밟아 데뷔한 시인을 두고 어느 쪽이 더 문화인이냐고 할때 대답하기가 궁색해진다. 아니, 궁색해진다는 것은 문예진흥원의 소위 원고료지원을 받는 문인쪽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국위선양에서나 현대적인 미적 기준에서나, 또 아울러 외화획득까지 덤으로 생각하더라도 단연 디자이너쪽이 오늘의 문화인상에 가깝지나 않을까. 필자는 지금 비아냥거리는 투로 이 소리를 하고 있는게 아니다.
냉혹하게 사실로 그런 것이다. 필자도 더러 혜택을 입는 처지에 이런 소리하긴 뭣하지만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부부서의 원고료지원을 통한문학지 발간이 과연 오늘의 생산적인 문화활동일 수가 있는 것인지. 그나마 원고료지원이 되는 쪽과 안되는 쪽의 선별기준도 여간 모호하지 않다.
80년에 강권으로 폐간조치 되었다가 작금 복간된, 누가 보아도 오늘 우리의 활기찬 문학을 대표하는 두 계간지 등에는 그런 혜택이 안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논외로 치고라도 더구나 해괴한 것은 딱지 붙은 문인이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지원고료가 나가기도 하고 안 나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단 딱지 붙은 문인의 원고는 지원고료가 얹혀져서 지불되고 그렇지 못한 시정잡배(!?)의 글은 당해 회사의 쥐꼬리만한 소정고료만 나간다.
가위 이 나라는 딱지 붙은 문인의 천국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문인이냐 문인이 아니냐를 가르는 그 딱지라는 것도 여간 모호한 것이 아니다.
문인주소록에 등재되어 있느냐, 데뷔라는 소정절차를 거쳤느냐, 문협회원이냐 등등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을 터이지만, 그런 것들부터가 당장 현실 돌아가는 사정과는 상관이 없는 켸켸묵은 것들에 밑받침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20, 30년대는 고사하고 50, 60년대만 해도 문화인이라고 하면 극히 드문 몇몇을 일컬었었고, 그 희소성으로만도 사회적으로 힘을 쓸수 있었고 대접을 받을만 했다. 문인이라야 통틀어 40, 50명 정도였던 것이, 필자가 문단에 첫발을 들여놓았던 1955년 가을의 문협 정기총회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작금은 어떤가. 문인 숫자는 문협 회원을 기준으로 2천명에 육박하고 있고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미 재래적인 문인 등룡문이니 신인데뷔니 하는 모호한 제도도 70년대 말께부터 사실상 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제 돈 있으면 무슨 글이든 써서 해마다라도 책을 낼수 있는 세월인 것이다. 책을 써서 낸다는 것으로만 말한다면,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게 쉬워진 세상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 연년세세 문인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정작 오늘의 우리 문화전반에서 문인들이 차지하는 위상은 날로 값이 떨어져가고 있고,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고, 색바래져 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이 문인대열에 끼려는 새 예비군들이 곳곳에 쇄도하고 있다. 그들은 순진하게도 문인이라는 것이 아직은 사회적으로 대접 받는 명사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사실상 아직은 대접을 받고 있다. 최소한 문예진흥원의 지원고료를 타먹고는 있으니까. 그러나 그 속알맹이를 들여다보면, 대접은커녕 실은 문예진흥원은 어쩌다가 골치 아픈 반실업자군상들을 덩어리째 떠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고있는 형국인 것이다. 문예진흥원인들 켸켸묵은 가부장적 문단기준에 발목이 잡혀있는만큼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적어도 문협이라는 것이 존립하고 있는 기반은 대강 이러하다. 따라서 직선제니 간선제니 하는 차원을 이미 넘어서 있지만, 그러나 일단은 중구난방으로라도 제 할 소리는 다 하도록 직선제로의 정관개정은 이루어져야 한다. 새 기틀은 낡은 기틀이 갈데까지 다 가서 스스로 껍질을 벗으며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문단에 관한한 낡은 기틀은 이미 벌써 갈데까지 다 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대안은 무엇인가. 한번쯤 거꾸로 생각해볼 길이 있을 것 같다. 지난번 선거에서 만의 하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을 때 일거에 자연스럽게(급격하거나 혁명적이 아닌 방법으로) 문단의 낡은 기틀이 가고 새 기틀이 탄생되었으리라는 그 과정을 한번 염두에 두어보자. 바로 그것이 대안이고 길이다.
제6공화국 출범과 함께 문화부로의 독립이라거나, 헌장제정, 초현대적 예술전당건립, 지방문화의 활성화방안과 그 지원책 등등 2000년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문화생활공간에 대한 의욕적인 대응을 평가절하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그것은 오늘의 냉혹한 현황을 정확히 짚는데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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