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도 '미국 때리기' 가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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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영업정지를 당한 멕시코시티의 미국계 셰러턴 마리아 이사벨 호텔 전경

미국과 멕시코의 감정싸움이 갈수록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이번엔 멕시코의 한 지방정부가 미국 유수의 호텔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서 '미국 때리기'에 가세했다. 올 초 미국 정부가 접경지 장벽의 확대 설치를 골자로 하는 반 이민법을 추진하는 데 대해 멕시코인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촉발된 양국 간 대립 양상이 제2라운드에 접어든 모양새다.

◆ "멕시코에선 멕시코 법 따라야"=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중심가를 관할하는 콰우테모크 구청은 지난달 28일 관내 독립기념탑 부근에 위치한 미국계 셰러턴 마리아 이사벨 호텔에 영업정지를 전격 통보했다. 호텔 출입구 곳곳에 영업정지를 알리는 행정명령 스티커도 붙였다.

비르히니아 하라미요 구청장은 통보 직후 "셰러턴 호텔은 지적받은 16개 위반 사항 중 단 한 개만 시정했다"며 "불법 건축 등 나머지 위반 사항을 시정하고 벌금 1만5000달러를 납부해야만 호텔 영업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지자 투숙객들이 서둘러 짐을 챙기면서 호텔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겉으로 발표된 것과는 달리 영업정지 처분의 실제 이유가 따로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호텔 측이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달 2일 쿠바의 에너지 부문 관리들이 이 호텔에서 미국 기업인들과 만나 쿠바 내 에너지 투자에 대한 설명회를 하던 중 호텔 밖으로 쫓겨나면서 비롯됐다.

호텔 측은 '미 국적자와 미국 법인은 쿠바인에게 일절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미 국내법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강한 압력을 받고 회의 도중 쿠바인들을 내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멕시코 정가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어떻게 멕시코 땅에서 미국법이 적용될 수 있느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여론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멕시코 연방정부도 결국 "셰러턴 호텔의 쿠바인 추방 조치는 멕시코 국내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벌금 부과를 적극 검토할 뜻을 밝혔다.

◆ 대선 전략으로 활용되는 반미감정=멕시코 당국이 이처럼 강경하게 나오는 배경에는 올 7월 2일 치러지는 멕시코 대선이 자리 잡고 있다. 멕시코는 최근 미 접경지 장벽 설치 문제 등 미국으로의 이민 문제가 사회 이슈화하면서 국민 사이에 반미감정이 급증하자 대선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반미감정을 등에 업으려 하고 있다.

이번 영업정지를 주도한 하라미요 구청장도 중도좌파 후보로서 그동안 대선 레이스에서 줄곧 선두를 유지해 온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멕시코시티 시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집권 국민행동당(PAN)의 펠리페 칼데론 후보가 지지도 조사에서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하면서 두 후보 간 경쟁이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시중 여론이 워낙 반미 쪽으로 기울어 있는 데다 대선 후보들의 전략이 온통 '반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대선이 치러지는 7월까지는 멕시코 내 반미감정이 계속 고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만간 제3, 제4의 양국 간 대립 사태가 발생할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는 셈이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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