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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제투성이 429조 수퍼 예산안 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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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헌법 54조는 국회의 예산안 처리 마감일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 즉, 12월 2일로 못 박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켜졌던 이 헌법 조항은 문재인 정부의 첫 정기국회에서 또다시 휴지 조각처럼 찢어졌다. 다만 어제 여야 간 주고받기 협상이 끈질기게 진행돼 헌법 기일을 이틀 넘기고 타결된 건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20대 국회의원들은 입법부가 법을 만드는 곳이지 법을 시도 때도 없이 어겨도 되는 오만한 초법부가 아니라는 점을 엄중히 깨달아야 한다.

늑장 타결일지언정 예산안이 확정됨으로써 내년 9월부터 만 0세에서 5세까지 90%의 유아들이 매달 10만원씩 아동수당을 차질없이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도 매달 25만원의 기초연금이 지급된다. 사회적 약자인 아동과 노인 계층에 복지 혜택이 확대돼 복지 국가의 기본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18년의 429조원 수퍼 예산은 국민 혈세(血稅)를 공무원 증원에 쏟아붓고,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게 최저임금 지원에도 투입돼 큰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이유로 공무원을 1만500명 증원해야겠다고 밀어붙였으나 야당들의 반대로 결국 9475명으로 낙착됐다. 최저임금 지원 예산은 3조원 수준으로 타결됐는데 2019년 이후에도 계속될 경우 그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지 의문이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주장하면서 국민들이 공무원 고용 비용을 대느라 등골이 휘고, 제 돈 풀어 다른 근로자의 임금을 지원하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예산 실험의 피해자가 되게 생겼으니 기가 막힐 뿐이다.

그동안 입바른 소리를 하던 국민의당은 민주당이 호남 예산 당근을 제시하자 입장을 확 바꿔버렸다. 이 때문에 비호남 시민들이 갖게 된 심리적 박탈감과 상실감도 두 당이 감당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